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신라의 대표적인 유물인 천마도는 올해로 발굴 50주년을 맞이했다. 천마도는 수학여행의 추억과 국제적인 역사도시인 경주를 대표하는 유물 이상의 의미이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천마처럼 1500년 전 유라시아 대륙과 맞닿으며 거대한 국가로 웅비하려는 신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천마도 코드’라고 해도 될 정도의 천마도 안에는 수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지난 50년간 한국과 유라시아의 숨은 관계를 상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유물로 자리매김한 천마의 기원을 살펴보자.》
남한에 없어 수입한 자작나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신령한 말이 구름 사이를 헤엄치는 듯한 신비감을 준다. 시베리아 북방에서 자란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렸으며 신라 지도층은 지배권 강화를 위해 북방 지역과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여하튼 무덤의 이름을 결정할 정도로 천마도의 느낌은 강렬하다. 신령한 말이 구름 사이를 헤엄치는 듯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한 느낌이 든다. 천마도는 가로 75㎝, 세로 56㎝, 두께 0.6㎝ 크기의 자작나무 껍질을 앞뒤로 덧대어 만든 말다래(障泥)를 말한다. 말다래는 달리는 말의 발굽에 차인 진흙이 기마인의 다리에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왕족이 말을 타고 행렬을 인도하면 그 양옆을 장식하는 화려한 장식이니 단순한 실용성을 넘어 가장 화려한 상징이다.
그런데 천마총의 자작나무는 특별하다. 넓이 70㎝ 정도의 크고 질 좋은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한 것이다. 자작나무의 껍질은 벗기면 곧 마르기 때문에 벗기자마자 세심하게 다듬고 도화지처럼 펼쳐 놓아야 한다. 여기에 천마 같은 예술을 그리려면 자작나무의 가공과 예술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자작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머나먼 시베리아 북방에서 자작나무를 구해 껍질을 벗겨 가공한 것을 신라로 수입해야 한다. 천마도뿐 아니라 금관 밑에 덧쓰는 모자의 재료로도 자작나무가 사용되었으니, 신라가 지속적으로 북방의 여러 지역과 교역을 해야 한다. 언제나 북방지역과 맞닿으며 나아가려 했던 신라의 귀족들에게 자작나무는 단순한 나무 그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왕을 하늘로 모셔간다’는 천마
2000년 전 만들어진 중국 북방 내몽골 허린걸 벽화묘에 있는 기린의 모습. 한때 천마도 속 그림이 천마가 아니라 중국 신화 속 동물인 기린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실제 모습은 많이 다르다. 강인욱 교수 제공
이렇듯 기마문화는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달해서 한국과 중국 일대로 널리 퍼졌고 신라에서 화려하게 완성되었다. 초원의 여러 문화를 숭앙하고 기마문화가 발달했던 당시 신라에는 이런 말 그림뿐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기마인들 사이에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한 말과 관련된 풍습이나 신화도 함께 내려왔을 것이다.
천마도의 세 번째 코드는 천마도 말의 발에 있다. 천마도의 말은 왼쪽의 앞발과 뒷발이 모두 뒤쪽을 향한다. 자연적인 걸음은 이렇게 나올 수 없다. 바로 한쪽의 앞발과 뒷발을 동시에 내딛는 측대보(側對步)법이다. 이런 걷기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 어릴 때부터 조련을 해야 한다. 측대보로 걸으면 속도는 느리지만 승마자는 흔들림 없이 편하게 탈 수 있다. 그래서 전쟁 중에 말 위에서 화살을 쏘거나 귀한 왕족이 퍼레이드를 할 때 많이 쓰인다. 이렇게 측대보로 달리는 모습은 유목민인 흉노가 도입해 널리 퍼뜨린 유물에 남아 있다. 그리고 흉노의 영향을 받은 선비와 부여, 나아가 고구려 벽화에서도 보인다. 천마도의 말이 측대보로 걷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라의 왕을 천천히 흔들리지 않고 편하게 하늘로 모셔간다는 뜻이었다.
왕권 강화 위해 북방지역 연계 강조
알타이산맥의 베렐 고분에서 발견된 2400년 전 천마의 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카자흐스탄 아스타나박물관에서 보유 중이다. 유목민들은 천마가 죽은 이를 하늘로 인도한다고 믿어 무덤에 함께 묻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유라시아 각지의 다양한 자료가 알려지고 보존 기술이 발달하며 천마도의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발굴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천마도 코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