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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뒷돈’ 이정근, 판결문에 적시된 범행 “나를 스폰해 달라”

입력 | 2023-04-14 13:31:00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청탁을 빌미로 억대 금품을 수수한 의혹 등을 받고 있다. 2022.9.23/뉴스1

사업가로부터 ‘뒷돈’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1심에서 검찰이 구형한 3년보다 높은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통상 선고 형량은 구형보다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14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대통령비서실장·중소벤처기업부장관·국회의원 등 정계 인맥을 과시하며 사업가 박모씨에게 알선의 대가를 요구하고 실제 일부 알선은 실행에 옮긴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씨는 수억 원의 돈은 ‘선물’을 받은 것이라며 범행을 부인했고 심지어 증거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참회와 반성으로 보석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도 선고 직전에 보석을 청구한 태도 역시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검찰이 예상보다 낮은 형을 구형하면서 일종의 ‘플리바게닝’(유죄협상)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은 이씨의 휴대전화 등에서 확보한 소위 ‘이정근 리스트’를 통해 야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이정근 “나를 스폰해 달라”…일부 알선 실행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옥곤)는 지난 12일 알선수재·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이씨에게 징역 4년6개월 선고했다. 이씨가 받은 명품 가방 등을 몰수하고 9억8000여만원의 추징금도 명령했다.

이씨는 2018년부터 2022년 1월까지 정부지원금을 배정하거나 마스크 사업 관련 인허가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사업가 박모씨에게 9억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2021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비용 명목으로 3억3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도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수천만원의 세금을 체납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비용을 고심하던 중 박씨를 만났다. 이씨는 모 장관을 언니라고 부른다거나, 내 뒤에 청와대 인사가 있다는 등 정치권 인맥을 과시하며 자신을 ‘스폰’해 달라고 적극 요구했다.

실제 이씨는 모 기관 처장에게 전화해 “잘 좀 부탁한다”고 말하고 국회의원에게 전화해 “편의를 봐달라”고 말하는 등 실제 일부 알선을 실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씨가 준 돈이 실제 청탁 대상자까지 전달됐는지 여부는 판결문에 담기지 않았다.

청탁을 명목으로 10억원 가량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2.9.30/뉴스1

◇ 선고 직전 보석 청구…증거 인멸 시도까지

이씨의 범행은 더 대담해졌다. 박씨를 ‘오빠’라 부르며 백화점에서 명품백이나 운동화를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박씨는 법정에 출석해 “젊은 사람들 말처럼 빨대 꽂고 빠는 것처럼 돈을 달라고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문자·통화내역 등의 증거가 확실한데도 이씨는 일부 범행만 인정하면서 “대부분의 돈은 박씨가 스스로 도와준 것”이라 주장했다. 심지어 이씨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박씨에게 허위 채무 확인서를 요구하고 언론인과 정치인을 동원해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까지 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범행과 태도를 질타했다. 재판부는 “정·관계 인맥을 과시하면서 자신이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실제 일부 알선 행위 실행까지 했다”면서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하는 등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지난 3월 최후변론에서 “벌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보석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하고도 선고 직전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한 사실도 밝혀졌다. 고위당직자 지위를 이용해 10억원이 넘는 돈을 받고도 반성 없는 태도가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 檢, 3년 구형…조응천 “플리바게닝 있었을 것”

검찰 구형보다 법원의 형량이 더 높은 이례적인 판결에 일각에서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 주장도 제기된다. 이씨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형량을 낮춰주는 것이다.

이날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10억대 금품수수·알선수재에 정치자금법 위반까지 되면 제 감으로는 한 5년 정도 구형을 해야 마땅한 것으로 본다”며 “이씨가 수사에 협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3년을 구형했다는 것은 집행유예를 내달라는 의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씨의 1심 선고가 진행된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관석, 이성만 의원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 2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씨의 휴대전화 녹취 파일을 분석하던 중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달라”고 말한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이 입수한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위해 당시 송영길 캠프에서 준비한 ‘돈봉투’는 총 90개, 금액은 총 9400만원이다. 이 가운데 20개는 현역 의원들 몫이었고 최소 10개는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돈 전달 과정에 관여한 공모자로 지목된 인물은 윤관석 의원, 이성만 의원,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 송영길 전 대표 보좌관 박모씨, 조택상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 등 9명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