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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메기’ 알뜰주유소… 소비자들 “싸긴 한데, 기대엔 못 미쳐”

입력 | 2023-04-15 03:00:00

[위클리 리포트] 알뜰주유소 12년의 명암
‘L당 100원 싼 주유소’ 내세워… 작년 1300개 넘는 등 꾸준히 성장
가격 저렴하지만 서울엔 10곳뿐… 소비자 “찾아가는 게 더 손해”
정부 세제 혜택 지금까지 이어져… 알뜰주유소 전환을 ‘로또’에 비유도




《알뜰주유소 12년, 기름값 인하 효과는

알뜰주유소는 2011년 12월 경기 용인시에 처음 들어선 지 12년 만에 1300여 개로 늘어났다. 전체 주유소 중 12%다. 휘발유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탄생한 알뜰주유소는 과연 기대만큼의 ‘메기 효과’를 내고 있을까.》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알뜰주유소. 전국의 알뜰주유소 1308곳 중 서울에서 영업하는 곳은 10곳뿐이다. 뉴스1

#1 “서울에선 알뜰주유소를 찾기도 힘들고, 있다 한들 거기까지 찾아갈 정도로 싼 건 아니에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A 씨(39)는 휘발유 가격에 예민한 편이다. 신용카드는 주유할인 혜택이 큰 카드를 골라 만들었고,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통해 휘발유 가격 동향을 수시로 살피는 편이다. 그런 그도 알뜰주유소를 자주 찾진 않는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알뜰주유소가 6km 이상 떨어져 있는 데다 동선상 갈 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끔 고속도로에서 알뜰주유소를 이용하는 게 전부다. A 씨는 “알뜰주유소가 조금 싼 편이긴 한데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게 더 손해”라며 “셀프주유소를 잘 찾아보면 알뜰주유소보다 싼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2 “알뜰주유소 인근 주유소 사장님들 얼굴이 다 안됐어요. 영업이 너무 힘드니까….”


1990년대 중반부터 경남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해온 B 씨는 알뜰주유소가 생긴 뒤 달라진 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는 알뜰주유소와 가격 경쟁이 붙으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며 “1, 2월엔 적자를 봤고 지난달은 적자를 간신히 면했다”고 했다. B 씨가 운영하는 주유소는 알뜰주유소와 3km 정도 떨어져 있다. 알뜰주유소가 들어선 뒤 매출이 30%가량 줄었다고 한다. 그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알뜰주유소 1km 내에 있는 주유소들은 매출이 절반 넘게 줄었다고 한다. B 씨는 “지금 운영 중인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바꿔 운영하고 싶다고 해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며 “모든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운영할 게 아니라면 경쟁이 가능한 수준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가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도입한 지 12년이 흘렀다. 정유 4사의 과점 체제를 해소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알뜰주유소는 전체 주유소 중 12%에 육박하면서 ‘제5의 주유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알뜰주유소 출범 후 석유제품 가격 하락 효과가 발생해 소비자들의 후생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반시장적인 정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다거나 정부가 처음 내세웠던 ‘L당 100원 싼 주유소’에 못 미친다는 아쉬움까지 다양한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육성·지원한 알뜰주유소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일반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졌다.






● 굳어진 시장 구조 깨려 도입한 알뜰주유소

알뜰주유소가 도입된 배경은 고유가다. 2011년 1월 배럴당 93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이 3개월 만인 4월 116달러까지 치솟았다. 그해 평균 가격도 100달러 이상이었다. 국내 주유소에선 휘발유가 L당 1900원, 경유가 L당 1700원 수준에 거래됐다.

당시 정부는 석유제품 도매 시장을 건드리기로 했다. 그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기름값이 묘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는 석유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할 방안을 찾아야 했고, 알뜰주유소가 그 수단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그해 12월 경기 용인시에 첫 알뜰주유소를 열었다.

알뜰주유소의 목표는 ‘다른 주유소보다 저렴하게 판다’는 것 단 하나다. 정유사가 만든 석유제품을 대량으로 공동 구매해 알뜰주유소로 저렴하게 공급하게 만들면 ①도매 시장에서는 정유사들이 일반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이 낮아지고 ②소매 시장에서는 알뜰주유소와 경쟁하는 인근 주유소들이 판매하는 석유제품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구상이다.

알뜰주유소는 한국석유공사와 농협경제지주가 석유제품을 공동으로 구매하고, 이를 개별 자영 알뜰주유소, EX알뜰주유소, NH알뜰주유소를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구조다. 석유제품을 공급할 정유사는 ‘최저가 낙찰제’를 통해 정유 4사 중 중부권과 남부권 한 곳씩 선정한다. 특히 공급 가격을 싱가포르 현물가격(MOPS)과 연동해 국제 유가를 빠르게 반영하도록 했다. 이를 ‘1부 시장’이라고 한다. 2014년 6월부터는 석유공사의 평택지사 저장시설에 저장한 뒤 공급하는 ‘2부 시장’도 생겼다. 현재 1부 시장 중부권은 SK에너지, 남부권은 에쓰오일이 공급하고 있다. 2부 시장 휘발유는 정유 4사가 아닌 한화토탈에너지스가 공급처다.

반면 정유사 브랜드를 달고 있는 주유소들은 해당 정유사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다. 비교적 소규모로 매입하기 때문에 협상력이 떨어지고, 소도시 소재 주유소 등 매출이 적은 주유소의 경우 더 높은 단가를 부담하기도 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알뜰주유소와 일반 주유소의 석유제품 공급 가격이 L당 100원까지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저렴하게 사서 저렴하게 파는 알뜰주유소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전국의 주유소 숫자는 2010년 1만3000개가량으로 정점을 찍고 매년 내림세를 그리고 있으나, 2011년 처음 도입된 알뜰주유소의 숫자는 매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3년 1000호점을 돌파하더니 2018년에는 전체 주유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겼다. 지난해 말 기준 알뜰주유소는 전국에 1308곳으로 전체 주유소 중 11.7%를 차지한다.

굳어져 있던 정유 4사의 시장 구도도 흔들었다. 시장 1, 2위를 차지하던 SK에너지와 GS칼텍스의 점유율은 줄고 3, 4위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의 판매가 늘었다. 현대오일뱅크가 2011년 12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중부권 알뜰주유소 공급업체를 지켜온 영향으로 풀이된다.

알뜰주유소는 일단 휘발유와 경유의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데는 공헌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알뜰주유소와 알뜰주유소 인근 주유소들이 다른 정유사 상표 주유소들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알뜰주유소 운영 10년간 증가한 소비자 후생이 총 2조1000억 원 수준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 소비자는 아쉽고, 불공정 경쟁 논란도 커져

다만 알뜰주유소로 인한 가격 인하 효과는 정부가 약속했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정부는 2011년 알뜰주유소를 도입하며 휘발유를 기준으로 많게는 L당 100원 안팎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기준 알뜰주유소의 L당 휘발유 가격은 1783.6원, 경유 가격은 1819.9원으로 전국 주유소 평균보다 휘발유는 29.2원, 경유는 23.0원 낮다.

알뜰주유소가 전국에 고르게 자리 잡은 건 아니다. 2020년 9월 기준 대도시 알뜰주유소 보급률은 5.69%로 지방의 알뜰주유소 보급률 13.98%보다 크게 낮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에 있는 알뜰주유소는 단 10개뿐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알뜰주유소가 있는 자치구는 강서·금천·영등포·양천·관악·성북·중구 등 7곳이다.

대도시에 알뜰주유소가 적은 건 이미 많은 주유소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반 주유소가 마진을 줄이고 저가 판매 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알뜰주유소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정유사들이 자사 브랜드 주유소들의 이탈 방지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 정책을 펴고 있다. 대도시 소비자들은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아 서비스 수준이 높은 일반 주유소를 선호한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방에서는 알뜰주유소의 존재감이 훨씬 크다. 그러다 보니 일반 주유소와의 불공정 경쟁이 늘 도마에 오르곤 한다. 정부는 알뜰주유소 도입 초기 정책 성공을 위해 세제 혜택, 여신 지원, 재정 지원 등을 복합적으로 제공했다. 지금도 여신 및 재정 지원은 유지되고 있다. 실제 비도심, 소규모 일반 주유소들은 알뜰주유소를 견제하기 위해 출혈경쟁에 나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휴·폐업 사례가 부쩍 늘었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공급 가격부터 L당 100원 차이가 나면 ‘마진을 남기는 알뜰주유소’보다 ‘마진 없이 파는 일반주유소’의 소비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경쟁이 이뤄질 수조차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럴 거면 모든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운영하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주유소 사장들 사이에서 알뜰주유소로 전환되면 ‘로또에 당첨됐다’고들 한다. 하지만 알뜰주유소 사이의 이격거리 제한이 있고, 알뜰주유소의 도입 취지 자체가 정유 4사 구도를 흔들기 위함이었던 만큼 현재를 넘어서는 양적 성장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시점에 맞는 알뜰주유소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알뜰주유소 정책이 초기 목적을 일정 부분 달성한 만큼 이제는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4월 알뜰주유소 도입 10년을 맞아 출간한 보고서를 통해 “논란이 된 불공정 개입 이슈 등을 검토해 사업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며 “알뜰유 입찰 제도 개선, 가격 운용 방침 개선을 통한 수익금 내재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한석유협회, 한국주유소협회, 한국석유유통협회 등 3개 단체는 정부에 알뜰주유소에 대한 정책건의서를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회에서도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 등이 토론회를 여는 등 개선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