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소녀들/히로세 레이코 지음·서재길 송혜경 옮김/259쪽·2만 원·소명출판
“짙은 남산의 푸르른 소나무를 올려보면서…맑은 한강의 여울을 멀찌가니 바라보면서…빛나며 번성하길 가르침이여.”
평범한 교가(校歌) 같지만 1908년 경성고등여학교(경성고녀, 후에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로 개칭) 개교식에서 부른 노래다.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다녔던 조선 제일의 엘리트 여학교였다.
식민 통치와 여성에 관해 연구한 일본 홋카이도정보대 명예교수가 경성고녀에 다녔던 이들을 인터뷰해 식민지 조선에서의 경험과 인식을 조명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따로 있었다. 조선인과는 생활권 자체가 분리돼 있었고, 접점은 ‘오모니(어머니)’나 ‘기지배’로 불렸던 식모 등 고용인이 거의 전부였다. 모두가 ‘너무나 맛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김치를 제외하면 조선의 문화도, 조선인도 깔봤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하는 것에도, 창씨개명에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조선을 그냥 일본이라고 여겼고, 식민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패전 직후 태극기와 만세 소리의 물결을 접하고 나서야 조선인이 얼마나 강렬하게 독립을 열망했는지, 일본의 지배가 얼마나 조선인을 괴롭혔는지 깨달았다. 풍요로운 생활 기반을 뿌리째 잃어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는 냉대에 직면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독립을 빼앗은 후 언어와 문자 등 문화까지 빼앗아 간 식민정책 속에서, 부끄러울 정도로 무지한 채로 살았다”고 반성했다. 저자는 “일본에서 이러한 자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존재 의의를 생각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