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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개인 과실? 이 사고는 구조적 참사다”

입력 | 2023-04-15 03:00:00

◇궤도 이탈/마쓰모토 하지무 지음·김현욱 옮김/424쪽·2만1000원·글항아리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19분 4초. 일본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시에서 벌어진 ‘후쿠치야마(福知山)선 탈선 사고’로 아내와 여동생을 잃고, 딸이 중상을 입은 아사노 야사카즈 씨의 시간은 이날 멈췄다.

2007년 6월 발표된 사고조사보고서는 23세 열차 운전사의 주의 소홀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운전사가 열차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과속하다 벌어진 사고라는 분석이었다. 고작 12줄의 글로 사고 원인을 기록한 이 보고서에는 사고의 구조적인 원인이 담기지 않았다. 지역환경계획연구소 대표였던 아사노 씨의 싸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날 운전사가 무리하게 과속하면서까지 열차를 몰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추적에 나선 것이다.

사고 당시 고베신문 기자였던 저자가 사고 이후 10년 동안 서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JR서일본)에 맞서 사고 원인을 파헤친 아사노 씨의 분투를 기록했다.

과속은 구조적 문제였다. 적자 노선을 떠안은 JR서일본은 배차 간격을 촘촘하게 편성하고 출퇴근 시간대 속도를 올렸다. 시간표에 따르면 사고 열차는 직전 열차가 떠나고 나서 1분 30초 뒤 출발하게 돼 있었지만, 문이 닫히기 직전 뛰어드는 승객까지 감안하면 출발 시간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JR서일본은 1분 이상 늦으면 ‘반성 사고’로 분류하고 운전사에게 매일 리포트를 쓰게 하거나,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징벌성 일근교육을 시켰다. 애초에 정시 운행이 불가능한 시간표를 짜놓고 운전사에게 책임을 떠넘긴 조직문화가 과속을 야기했다는 게 아사노 씨가 분석한 사고 원인이었다.

아사노 씨가 걸어온 10년의 궤적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안전관리를 체계화하는 규정이 마련됐고, 지연 운행에 대해 내리는 징벌 제도가 없어졌다. 열차가 정해진 속도를 넘어섰을 때 자동적으로 감속시키는 신형 자동 열차 제어 장치도 설치됐다. “사고를 사회화하는 것이 유가족의 책무”라는 자신의 말을 지킨 것.

2018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이듬해 고단샤(講談社) 논픽션상을 받았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