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창용 “韓서 SVB사태땐 예금인출 美보다 100배 빠를 것”

입력 | 2023-04-15 03:00:00

“디지털시대 예금보호 고민할 것
예금인출 가짜뉴스는 엄벌해야”
추경호, 옐런 美재무장관 만나
“美 IRA-반도체법 불확실성 여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같은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더 빨랐을 겁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1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블룸버그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글로벌 은행 위기와 관련해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젊은층의 디지털 뱅킹이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이 발달했고 예금 인출 속도도 빠른 만큼 이런 디지털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에게도 손쓸 새 없이 엄청난 속도의 디지털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과거에는 은행이 문을 닫았을 때 수일 내 예금을 돌려줬지만 이제 수 시간 내 고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한은이 감독 당국과 함께 어떻게 대응할지가 새로운 숙제”라고 설명했다.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회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춘계회의 참석차 방미 중인 이 총재는 이날 앞서 가진 동행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최근 은행 관련 사태로 많은 중앙은행이 디지털 경제에서 규제나 예금보호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최근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에서 1조 원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이 발생했다는 허위 사실이 퍼진 사례를 언급하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가짜 뉴스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로 가짜 뉴스가 퍼지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은행에서 돈을 뺄 수 있다”며 “이런 가짜 뉴스가 나오면 일벌백계하고 금융시장 교란 요인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14일 간부회의에서 금융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악성 소문에 엄중히 대처할 것을 지시했다.

이 총재는 최근 열린 경제·금융 당국 수장 회의에서 금융감독원의 은행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는 일각의 보도에 대해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총재는 “(회의 자리에서) 현재 금리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미시적으로 간섭하지 말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예금·대출금리 마진(차이)을 줄이도록 지도 혹은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글로벌 경기와 관련해서는 “미국 경기는 상고하저(上高下低)겠지만 우리는 중국, 정보기술(IT) 경기에 달려 있다”며 “반도체 가격이 많이 내려갔으니 하반기 이후 좋아지면 우리는 상저하고(上低下高)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3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추 부총리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에 대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우려를 전달했다. 기획재정부 제공

방미 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3일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 하반기(7∼12월)에 좀 더 나은 경기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금융 상황에 대해선 “뉴욕 월가나 신용평가사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금융시장, 기관 건전성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높다”며 “비금융권 일부 섹터에서 연체율이 다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직 그것이 시장 전반의 불안을 확산시키는 시스템적 리스크로 다가올 가능성은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추 부총리는 이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을 만나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해 “관련 규정상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우리 업계가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세종=최혜령기자 herstory@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