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7인, 챗GPT로 단편소설 집필 미문 아니어도 탄탄한 표현력 구사 ‘음흉한 분위기’는 제대로 반영 못해 ◇매니페스토/김달영 외 지음/212쪽·1만5000원·네오북스
“거리는 평평하고 넓으며 건물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돼 있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하며, 풍경은 이른 아침 또는 늦은 오후에 특히 아름답게 보인다.”
단편소설 ‘텅 빈 도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시작된다.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미문은 아니지만, 표현력이 꽤 탄탄하다. 글을 쓴 건 놀랍게도 ‘챗GPT’다. 함께 작품을 쓴 김달영 작가가 “챗GPT가 나보다 훨씬 더 잘 쓰는 것 같다”고 토로할 만하다.
7명의 인간 작가가 ‘챗GPT’로 창작한 단편소설집이다. 인간이 챗GPT에게 지시를 내리고, 문장과 구성을 다듬었지만 인공지능(AI)이 큰 역할을 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챗GPT 활용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나플갱어 작가는 챗GPT에게 지구에 가장 위협적인 기후위기가 무엇인지 물어 바다에 잠긴 도시가 등장하는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을 썼다. 윤여경 작가는 챗GPT에게 인기를 끌 만한 주제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AI가 인간의 무의식을 읽는 ‘감정의 온도’를 집필했다. “얼개만 주면 살을 붙여준다”(‘그리움과 꿈’의 오소영 작가), “결말을 손댈 필요가 없다”(‘오로라’의 전윤호 작가) 같은 고백을 읽다 보면 창의력이 정말 인간만의 것인지 의심되기도 한다.
인간과 AI가 쓴 문장이 헷갈리는 시대, 이제 문학에도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서두에 챗GPT 사용 여부를 밝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마치 조미료를 넣지 않은 식품을 따로 표기하는 것처럼.”(‘펜웨이 파크에서의 행운’의 채강D 작가)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