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오픈채팅의 재미있는 대화 내용을 캡처한 ‘짤’ 중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껴 쓰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거지방’의 짤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의 5300원짜리 자몽허니블랙티를 사서 마셨다는 글. 이에 대해 ‘스타벅스, 배가 불렀군요’ ‘물을 마시세요. ○○○ 1100원’ ‘○○ 미네랄워터는 600원입니다’ 등 꾸중의 답글이 속출했다. 마지막 결정타는 ‘물을 왜 돈 주고 사 먹죠? 그냥 회사 가서 마시세요’라는 글이었다. 동의한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거지방’은 극도의 절약으로 거지처럼 산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현재 오픈채팅에서 수백 개가 운영되고 있다. 방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주로 참여자끼리 소비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이를 평가한다. 일부 방에선 아예 한 달 목표 생활비를 정하고, 실제 지출액을 공유한 뒤 가장 많이 쓴 사람에게 벌칙을 내리기도 한다. 또 새로 멤버가 들어오면 “돈 좀 그만 써 ○○○야,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등의 자극적인 글을 자동으로 올리는 방도 있다.
▷주로 불필요하거나 과다한 지출을 꾸짖거나 뜯어말리는 채찍성 글이 주를 이루지만 아낀 내역을 보여주며 칭찬을 유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차 얻어 타서 택시비 아낌 +6000’ ‘학식 6900원인데 아빠 카드 씀’ 등이다. 또 돈 주고 사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절약 방법을 공유한다. 휴대전화 그립톡을 사고 싶다고 하면 종이로 대체 거치대 만드는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는 식이다. 카드나 통신사 포인트 활용법,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 등도 단골로 올라온다.
▷젊은이들은 ‘거지방’을 통해 “나만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건 아니지”라는 공감대를 갖는다. 젊은이들은 혼자 아끼려고 하면 힘들지만 같이 하면 서로 의지가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토로한다. 여기에 ‘나도 잘하고 있다’는 안도,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 대화가 오가면서 나오는 깨알 재미 등을 함께 찾는 것이다. 소비를 과시하던 ‘플렉스’와 정반대인 ‘거지방’의 인기는 요즘 경제 상황을 보면 꽤 오래갈 것 같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