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화 성공 후 지난해 첫 수출 작년 6월 미국 수출 시작으로 독일-러시아 과점 시장에 합류 입자 가속기 설비 수출도 고려… 최근엔 자동화 시스템 구축 추진
전북 정읍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 구축된 ‘나선형 양성자 가속기(사이클로트론)’. 사이클로트론에서 만들어진 방사성 동위원소는 로봇팔이 달린 장치에서 정제 과정을 거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미국이 탐내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저마늄-68(GE-68)’을 국내에서 생산 중입니다. 이미 지난해 첫 수출을 이뤄냈으며 올해 안에 2억5000만 원 이상의 추가 수출을 기대 중입니다.”
7일 전북 정읍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서 만난 박정훈 원자력연 가속기동위원소개발실 책임연구원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내비쳤다.
한국은 지난해 6월 저마늄-68을 미국 의료기기회사 ‘샌더스메디컬’에 수출하며 첫 미국 수출길을 열었다. 2019년 첫 생산에 성공하며 그간 미국과 독일, 러시아 등 소수 국가들이 독점하고 있던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시장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뒤 수출까지 이어졌다. 박 책임연구원은 “생산기술이 없는 국가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는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라며 “전략 무기화할 수 있는 국가전략기술”이라고 말했다.
먼저 양이온과 전자 2개로 구성된 수소 음이온을 자기장과 전기장을 사용해 나선형 궤적으로 가속한다. 이후 탄소 포일을 통과시켜 전자를 제거해 양성자를 인출한다. 이렇게 가속된 양성자를 특정 물질의 원자핵에 충돌시키면 방사성동위원소가 생산된다.
원자력연 사이클로트론은 국내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대형 연구시설 3개 중 하나다. 부피로 따지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6대가량, 면적으론 115㎡다. 1.5V 건전지 2000만 개에 해당하는 최대 30Mev(메가전자볼트)의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할 수 있다. 2013년 구축된 뒤 운영 안정화와 성능 향상 기간을 거쳐 2019년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박 책임연구원은 “프로토타입(시제품)을 개선하고 정상화하는 과정이었다”며 “외산에 기대어 온 부품들의 국산화를 이루는 기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저마늄-68은 신경내분비종양 및 전립샘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 원료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등 방사선 영상장비의 정확도를 유지하기 위한 ‘교정선원’ 용도로 활용된다. 교정선원은 방사선의 정확도를 교정하는 방사선 원료를 의미한다. 저마늄-68은 반감기가 약 270일로 비교적 길어 장기간 운반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이러한 국산화 노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등으로 시설 자체를 수출하는 방안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사이클로트론 시설 자체도 ‘턴키’(설계 시공 일괄입찰 방식) 방식으로 수출이 가능하다”며 “수출이 되면 국내 장비 기업들은 물론 유지보수 기업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오랫동안 보관하며 뽑아 쓸 수 있는 ‘밀킹 시스템’ 등의 개발도 진행 중이라며, 생산 허가 등의 과정을 거쳐 상품화하면 한 해 10억 원 이상의 판매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사이클로트론 업그레이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자판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특정 방사성동위원소가 생산되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입자를 가속한 후에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려면 정제 등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까지 모두 자동화하려는 것”이라며 “사이클로트론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방사선을 방출하는 동위원소 중 암 치료나 진단 등 의료용으로 쓰이는 동위원소.
정읍=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