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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간호사 개원 첫단추” vs “법 통과돼도 불가”

입력 | 2023-04-17 03:00:00

간호법 주요 쟁점 들여다보니
간호사 업무 범위 의료법 그대로
“직역단체 싸움, 국민 생명권 위협”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의료계 직역단체들 간의 ‘끝장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13개 의료계 직역단체가 연합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6일 오후 서울시청 일대에서 2만 명(주최 측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총파업 결의대회를 벌였다. 이들은 “간호법과 의료인면허박탈법을 통과시킨다면 보건의료 체계를 지키기 위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간호법은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라”며 27일로 상정을 미뤄둔 상태다. 간호법을 둘러싸고 의료계 분열이 격화되는 이유를 팩트체크 형식으로 정리했다.

간호사 단독 개원 가능해지나=의협은 간호법 제정 시 간호사가 의사 없이 ‘헬스케어 센터’ 등을 개원해 단독 운영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간호법 제정안 1조에 간호사의 업무 수행 무대를 의료기관과 ‘지역사회’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의협이 가짜뉴스를 퍼뜨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단 표결을 앞둔 현재 간호법 제정안 내용대로라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은 불가능하다. 간호사 업무(제10조 2항)를 의사의 지도하에 수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협은 간호법 제정이 간호사 단독 개원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협 관계자는 “일단 간호법이 제정되면 향후 법 개정이나 시행령 제정 등을 통해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길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또 ‘지역사회’라는 단어가 간호법에 명시되면 간호사들이 의료기관을 떠나 지역사회로 빠져나가면서 병원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 업무 침해하나=간호법이 시행되면 간호사가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다른 보건의료 직역의 업무를 침해하게 될 거란 우려도 있다. 이 또한 간호법 제정안 자체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이다. 간호법상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규정(제10조 1∼4항) 자체가 현재 의료법에 명시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건복지의료연대 측은 간호법을 통해 의료계 내 간호사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며 직역 간 업무 침해가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 나오면 간호조무사 못 하나=간호법은 간호사와 함께 ‘간호 인력’의 다른 축을 담당하는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법이기도 하다. 간호법 제정안에선 간호조무사의 학력 기준이 고졸 이하로 제한돼 있어 ‘대학 나온 간호조무사’는 배출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는 간호법 제정안이 간호조무사를 차별하는 ‘간호사법’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간협은 “원래 의료법에 있는 자격 규정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계 내홍으로 결국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간호법 내용 대부분은 이미 의료법에 명시된 내용인 만큼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가 얻을 이익도, 다른 의료인들이 입게 될 손해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직역 이기주의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간호사 간 업무가 사실상 달라지지 않는데도 간호법 논쟁이 직역단체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정쟁으로 소모되고 있다”며 “의료계 파업이 현실화되면 국민의 생명권만 위협받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