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 소방관·작가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하라.”-류시화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저자가 인도 여행 중 들은 이야기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을 당시 영국인들은 인도 콜카타에 골프장을 만들어 골프를 쳤다. 한데 불행히도 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방해꾼과 마주쳤다. 원숭이들이 골프공을 집어 가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며 훼방을 놓은 것. 경기를 다시 시작하고 담장을 높여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새로운 규칙이 바로 저 문장이었다고 한다.
후회와 슬픔에 잠겨 일주일을 누워서 지낸 적이 있다. 내가 주인공인 영화엔 왜 이리도 빌런들이 많던지, 이번엔 타노스를 만났다. 페루에 영주권을 따기 위해 갔다가 가진 돈 몽땅 사기를 당하고 마음고생만 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입맛도 없어서 물에 밥 말아 먹다가 이 글귀가 생각나서 책을 집어 들었다. 미스터 굽타의 충고는 여전히 따가웠다. 그 길로 서울행 버스를 타고 상암동 건설 현장에 내렸다. 외국에서 사기를 당하고 왔다고 하니, 고생했고 잘 왔다며 인력소 형님들이 나를 반겼다. 그렇게 소방관도 되었고, 작가도 된 걸 보면 서른다섯 살에 생긴 새로운 규칙은 여전히 유효했다.
살다 보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안 된다고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때 이 문장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최규영 소방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