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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두려웠지만… 자립의 꿈 이뤄 행복”

입력 | 2023-04-17 03:00:00

‘푸르메소셜팜’ 근무 발달장애인들
농사-집안일 배우며 독립 준비
“춤 동영상-요리 등 취미 즐기고
스스로 살아갈 힘 키우려 가계부 써”



13일 오후 경기 여주의 한 아파트에서 이수연 씨(왼쪽)와 이샛별 씨가 거실을 청소하고 있다. 올 1월 자립한 이들은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자립에 용기를 냈으면 한다”고 했다. 여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아직 실수도 많고 일도 어려워요. 하지만 직접 번 돈으로 주말에 마라탕 사 먹을 생각을 하니 설레네요.”

13일 오전 경기 여주시 오학동 ‘푸르메소셜팜’에서 토마토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발달장애인 이수연 씨(30·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해 초 농장 일을 시작한 이 씨는 올 1월 자립해 여주 시내에 있는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 씨는 “20년 넘게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며 자립이 소원이었다. 직업이 생기고 자립의 꿈도 이룬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2021년 3월 문을 연 푸르메소셜팜은 발달장애인들이 근무하는 국내 첫 스마트팜이다. 장애인 재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푸르메재단이 2019년 농장을 기부받아 만들었는데 현재 발달장애인 50여 명이 근무 중이다.

푸르메재단과 여주시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해 3월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자립 지원에 나섰다. 시설에서 나와 여주시 지원 임대주택 ‘자립홈’에서 두 명씩 생활하게 한 것이다. 목표는 이들을 2년 후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이다.

이날 농장에서 토마토를 수확하던 김광채 씨(23)는 “퇴근 후 (시설이 아니라) 집으로 가 걸그룹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동영상을 찍을 계획”이라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지난해 3월 자립한 그는 본인의 춤 동영상을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려 ‘좋아요’ 50여만 개를 받는 유명인이 됐다. 김 씨는 “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할 때는 취미를 가질 생각을 못했다. 자립을 하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효진 씨(30)는 스스로를 ‘취미 부자’라고 소개했다. 요리, 자전거, 사진에 이어 최근엔 드럼 연주에 도전하고 있다. 이 씨는 “농사일로 힘들게 번 돈을 행복을 위해 재투자하면서 보람이 크다”며 “1년 앞으로 다가온 독립에 대비해 여윳돈도 모아둘 예정”이라고 했다.

올 1월 자립한 이샛별 씨(21·여)는 매일 퇴근 후 2시간씩 한글을 공부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이 씨의 방엔 한글 문장과 단어가 적힌 종이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이 씨는 “영화도 보고, 공원도 가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키우기 위해 가계부도 쓰고 집안일도 하면서 책임감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농장에서 하루 4시간 동안 근무하며 월급 100여만 원을 받는다. 또 매달 120시간씩 곁에서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청소, 장보기 등을 배우며 자립을 위한 발걸음을 떼고 있다.

오는 20일은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 및 장애인의 재활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정된 제43회 장애인의 날이다. 자립의 꿈을 이룬 이들은 다른 장애인들도 포기하지 말고 자립에 도전하라고 입을 모았다. 이수연 씨는 “처음에는 자유가 낯설고 두려웠지만 매일 새로운 일을 배울 때마다 사회의 일원이 되는 기분”이라며 “자립을 꿈꾸는 장애인이 있다면 준비를 철저히 하고 용기를 내 자유를 꼭 누려봤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여주=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