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2년 4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북부 비코카라는 평원에서 프랑스군과 합스부르크, 로마 교황령, 스페인 연합군이 맞붙었다. 이날 프랑스군에는 필승을 약속하는 무적의 병기가 있었다. 16세기 유럽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용병대였다. 그중에서 스위스 용병대는 가장 비싸고 승리를 약속하는 보증수표였다. 그들이 창안한 도끼창을 이용한 전투대형은 유럽의 어떤 군대, 심지어 중무장한 기사의 돌격도 처참하게 분쇄하는 무적의 대형이었다.
스위스인들의 전투기술은 다른 나라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전투에 대한 특별한 의지, 대원을 하나로 묶는 프로의식, 수많은 승리가 제공한 확신, 고향의 척박한 삶 등 다양한 요소가 스위스 용병대의 전설을 만들었다.
연합군은 도랑의 흙을 파내서 급조한 언덕을 만들고, 이곳에 포진해서 방어 태세를 굳혔다. 흙더미 위에는 새로 전장에 등장한 신형 무기 대포를 놓았고, 전면에는 화승총 부대를 배치했다. 8000명의 스위스군이 선두에서 연합군을 향해 진격했다. 양군의 간격이 270m에 도달하자 연합군이 대포를 발사했다. 스위스군은 큰 피해를 보았지만, 연합군은 그들의 용기와 진격을 멈출 수 없었다. 전열이 도랑에 도달하자 화승총의 총성과 연기가 전쟁터를 뒤덮었다. 순식간에 매캐한 연기가 전장을 뒤덮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비명과 신음, 피 냄새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스위스군의 밀집대형은 총과 대포의 위력을 극대화시켰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든 세상에 갇혀 산다. 어설픈 지식으로 혹세무민하고,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날 스위스 병사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