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네 차를 좀 타봐야겠다.” 아버지와 나는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한다. 몇 년 전 아버지는 내 낡은 차를 달라고 했다. 본인의 준대형 세단은 이제 너무 커서 처분할 텐데 전기차를 지금 사자니 기술 과도기 같다고. 이유인지 핑계인지 몰라도 아버지에게 차 내주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었다. 명의 이전을 해 드린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명의에 가족 보험을 추가하자고 했다. 별생각 없이 응했다.
그리되니 내가 아버지에게 차를 공짜로 준 모양이 됐다. 명의상 내 차니까 세금과 보험료는 내가 낸다. 실질적으로도 내 차니까 엔진오일 교체 같은 것도 내 돈으로 한다. 아버지는 이미 이 차의 개인화를 끝내서 나라면 두지 않을 염주 같은 걸 차에 걸어두었다. 염주 같은 걸로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미묘하게 거슬렸다.
집에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오자 내 감정은 미묘한 불편에서 실질적 짜증이 되었다. 차가 내 명의니까 가끔 아버지가 신호위반, 과속, 불법주차 등을 할 때 그 모든 과태료가 내게 왔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이제 노인인데 정정하시네” 하고 말았지만 바이오리듬이 나쁠 때는 진지하게 화가 났다. 본가에 가서 무력 행사처럼 몰고 돌아올까 한 적도 있다.
나는 많이 버는 아빠들이 부러웠다. 우리는 서민 가정이다. 돈이 궁색하기도 했고 돈 때문에 티격태격도 했다. 가족보다 더 큰 사회에 나가 알았다. 세상에는 남을 속이거나 해를 끼치며 살아가는 자도 있고, 돈 버는 재능은 인간의 여러 재능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내 아버지는 속은 적은 있어도 속이는 자는 아니었고, 그는 나에게 돈보다 소중한 걸 여럿 알려주었다. 내 부친은 그저 사는 요령이 모자란 남자였구나. 그의 친자인 나에게도 그 요령은 없구나. 나이가 들며 이런 걸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스스로를 깨닫는 건 내 주변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부모를 더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효심과는 조금 다른, 덜 너저분하게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도시인끼리의 존중과 애정이었다.
최근 오랜만에 과태료 통지서가 왔다. 신호위반. 최근 개정된 ‘적신호 우회전 시 일시정지’를 모르고 우회전을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런 건 모를 수 있겠다 싶어 평소와 달리 전화를 걸었다. 법이 바뀌었으니 앞으로 조심하시라고 하고 안부를 여쭸다. 아버지는 청계천을 산책하는 중이라고 했다. 웃음이 나왔다. 초로의 남자가 금요일 저녁에 웬 청계천이야 싶었고, 실은 나도 그때 청계천에 있었다. 서울의 아버지와 아들이 이런 걸까. 내가 청계천에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아직 서먹하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