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 “李와 통화” 주말경 입장 발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1년 송영길 전 대표가 당선된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17일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검찰이 12일 강제수사에 착수한 지 5일 만이다. 당초 ‘집권 여당의 국면 전환용 기획 수사’라고 반발하던 민주당이 현역 의원들의 녹취록이 잇달아 공개되자 뒤늦게 태세 전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가 당과 관련된 일로 공식 사과한 것은 지난해 8월 대표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직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볼 때 당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어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 전 대표는 “전날 이 대표와 통화했다”면서도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내가 모르는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르면 이번 주말 기자회견에서 귀국 여부와 시점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檢기획수사”라던 野, ‘돈봉투 녹취록’ 잇따르자 결국 공식 사과
李, ‘전대 돈봉투 의혹’ 5일만에 사과
野, ‘셀프 면책’ 의식 자체조사 보류… 비명계 “성역없이 조사해야” 반발
송영길 “李와 통화… 난 모르는 일”
與 “이재명, 피해자 코스프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李, 宋에 귀국 요청… 宋 “의혹 모르는 일”
이 대표 등 당 지도부는 16일 저녁 비공개로 모인 자리에서 당 대표의 공식 사과 및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한 조기 귀국 요청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 대다수가 이 대표가 직접 사과하는 방안에는 찬성했지만 윤리감찰단 등 당내 기구를 활용한 진상 규명 여부를 놓고는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었다고 한다. “국민적 의혹이 된 만큼 당이 뭐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당에 수사권도, 수사할 명단도 없는 상황에서 조사가 실효성이 없는 데다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엇갈린 것. 4시간이 넘는 공방 끝에 ‘일단 자체 조사는 보류하고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데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자체 진상 규명을 보류한 건 자칫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당헌·당규상 당 대표 직속 기구인 윤리감찰단은 감찰 결과를 대표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대장동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받는 이 대표가 다른 의원에 대한 윤리감찰을 관리 감독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이 대표가 이날 사과한 것을 두고도 자신의 수사에 대해선 ‘야당 탄압’이라고 규정했던 것과 달리 ‘이중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전날 밤 송 전 대표에게 직접 조기 귀국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전 대표는 이날 파리에서 가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표와 어젯밤 통화하면서 내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 (돈봉투 의혹은) 처음 말한 것처럼 모르는 일이고 검찰 조사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송 전 대표가 임기 중에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현역 의원들에겐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당을 위해 먼저 탈당하라고 권유하더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수준”이라고 했다.
● 비명계 “강도 높은 진상 규명 해야”
이른바 ‘돈봉투 리스트’에 포함됐다고 의심받는 친명계 의원들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의혹을 극구 부인했다. 수도권의 A 의원은 “전당대회 땐 송영길 캠프에 있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호남 지역의 B 의원은 “내가 송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라 의심받는 것 같은데, 오히려 가까운 사람한테 돈을 왜 주겠냐”며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는 가깝지도 않다”고 부인했다.
비명계에선 당에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이번 의혹을 ‘쓰레기 같은, 아주 시궁창에서만 볼 수 있는 냄새 나는 고약한 일’이라고 칭하며 “지도부가 가차 없이 내부 척결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실제로 실행해야 한다. 어설프게 대응하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원욱 의원도 이날 BBS 라디오에서 “당 지도부가 ‘기획수사’라고 얘기한 건 아주 잘못된 처사”라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