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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전 재산 뺏기고 살 곳마저 잃은 2천 가구… “이곳이 재난 현장”

입력 | 2023-04-19 00:00:00

18일 오후 7시경 인천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출범식 및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인천=이훈구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의 가슴 아픈 죽음이 이어진 인천 미추홀구에서 사실상 한 개 동 전체가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와 빌라, 오피스텔이 12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추홀구 등 수도권 일대에서만 2000가구 이상이 경매에 넘어갔거나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외벽에는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피해자들의 호소문이 붙어 있다. 거리로 나선 피해자들은 “이곳이 바로 재난 현장”이라는 절규를 쏟아내고 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피해 아파트·빌라 34곳 중 이미 12곳이 전체 가구의 90% 이상이 경매에 넘어간 상태다. 전체 피해 가구 3079가구 중 68%인 2083가구의 경매가 진행될 것으로 추정된다. 경매에 넘어가 낙찰되면 10가구 중 3가구는 최우선변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17일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여성 박모 씨도 이런 경우다. 해머던지기 육상 국가대표 출신으로 애견 미용 자격증을 준비하며 제2의 인생을 그리던 30대 여성의 꿈은 절망 속에 스러져갔다.

피해자들을 잇따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전세사기는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한다. 계약 전에 아무리 꼼꼼히 확인해도 건축주, 분양업체와 공인중개사 등이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빠져나가기 어렵다. 불법이 판치는데도 감독을 게을리한 정부, 묻지마 보증과 대출을 남발한 금융기관, 세입자 보호 법안을 방치한 국회 모두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어제 정부는 부랴부랴 전세사기 관련 경매 일정을 중단하는 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21개 대책을 내놨지만 피해 예방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정작 피해자 구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가 미추홀구를 찾았을 때만 해도 피해 가구는 651가구, 경매로 넘어간 집은 6가구뿐이었는데 몇 달 새 눈덩이처럼 불었다.

지금이라도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피해자들이 시간을 벌 수 있도록 경매 중단 조치가 빨리 실행되도록 속도를 높여야 한다. 피해자들에게 절실한 긴급 주거 지원 조건도 완화하고 저리 대출도 서둘러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이미 경매로 집이 넘어간 경우 등 사각지대의 피해자도 살펴야 한다. 청년들이 절망의 늪에 빠져 삶을 포기하는 일이 더는 되풀이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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