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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진보당 대통령, 보수당 메르켈에 “비교 불가 정치인” 훈장

입력 | 2023-04-19 03:00:00

“16년간 국민 위해 지치지 않고 일해”
獨 3번째 ‘특별 공로 대십자훈장’
‘정당 뛰어넘는 협치 사례’ 평가속
“연정 정책 실패 덮기용” 비판도 나와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7일 독일 수도 베를린 대통령 관저인 벨뷔궁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에게서 받은 특별 공로 대십자훈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메르켈 전 총리의 남편 요하임 자우어 훔볼트대 교수(오른쪽)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부인 엘케 뷔덴벤더 판사(왼쪽)가 함께했다. 베를린=AP 뉴시스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첫 동독 출신 총리로 16년간 독일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독일 최고의 명예 훈장이 수여됐다.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CDU) 출신인 메르켈 전 총리에게 이 훈장을 수여한 사람은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SPD) 소속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2009년 독일 양대 정당의 총리 후보로 맞대결을 펼친 인연이 있다.

이번 훈장 수여를 두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전임자에 대한 예우와 존중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메르켈 대연정’ 내각에서 총리와 외교장관으로 함께 재임하며 펼쳤던 정책에 대한 책임론이 최근 제기되자 이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 파트너이자 경쟁자였던 두 사람
타게스샤우 등 독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메르켈 전 총리는 17일 독일 수도 베를린 벨뷔궁에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으로부터 특별공로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역사적 업적을 이룬 독일인에게 부여되는 최고 수준의 훈장이다. 대상자 선정은 대통령실에서 주관한다. 이 훈장을 받았던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 재건을 주도한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초대 총리와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헬무트 콜 전 총리뿐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메르켈 전 총리에 대해 “비교 불가능한 정치인”이라며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 독일과 국민들을 위해 지치지 않고 일했다”며 경의를 표했다. 수여식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프란츠 뮌테페링 전 사민당 대표 등 20명이 초청됐다. 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자 메르켈 전 총리 첫 취임 당시 독일 축구대표팀을 맡았던 위르겐 클리스만 감독도 참석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메르켈 전 총리 집권 시절 두 차례 외교장관과 한 차례 부총리를 역임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5년 메르켈 집권 1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에서는 기민-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사민당이 함께한 대연정이 구성됐다. 이 같은 구도에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메르켈 내각의 첫 외교장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사민당 출신 외교장관은 약 23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는 메르켈 내각의 부총리까지 지내는 등 중용됐다.

하지만 2009년 총선에서 두 사람은 각각 기민당과 사민당의 총리 후보로 나서 정면승부를 펼쳤다. 이때 메르켈 총리 주도의 보수 진영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당시 사민당을 이끈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쓰라린 패배”라고 참패를 인정했다.



● “정치적 책임 덜려는 꼼수”
정치적 파트너이자 경쟁자였던 두 사람이 이번 훈장의 수여를 두고 다시 만난 것에 대해 “초당적 협치”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각에선 “정치적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메르켈 대연정’ 내각에서 두 차례(2005∼2009년, 2013∼2017년) 외교장관을 했던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당시 추진했던 친러시아 정책과 난민 수용 정책 등에 대한 비판이 최근 커지자 훈장 수여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줄여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독일 유력 언론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잘못된 정책에 주어진 훈장”이라며 “슈타인마이어가 메르켈의 정책을 ‘영광의 페이지’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메르켈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수여 자체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민당 소속 안드레아스 뢰더 독일 마인츠대 현대사 교수는 현지 언론에 “퇴임 1년 반밖에 안 된 메르켈 전 총리에게 대십자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며 “그의 대러시아 외교는 최악의 실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퇴임 직후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론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그는 재임 시절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등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