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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설화로 만나는 새로운 경주 여행

입력 | 2023-04-20 03:00:00

[DA 스페셜] 황윤 작가 고고학 시리즈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2 만파식적편·황윤 지음/344쪽/1만9900원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2 만파식적편’은 황윤 작가의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9번째 책으로 독자와 함께 여행하듯 견학과 산책을 역사에 접목하는 고고학 답사기다. 특히 ‘삼국유사’ 기이 편에 기록돼 있는 설화 만파식적을 주제로 선보이는 최초의 답사기로 경주 곳곳을 직접 찾아가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추적하고 고증함으로써 독자에게 진정한 고고학의 묘미를 전한다.

지금까지 만파식적의 의미를 문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있었지만 경주라는 공간에서 만파식적과 연관된 각각의 유물과 유적, 또 그것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과 장면이라는 수많은 구슬을 꿰어 하나의 결과물로 선보인 적은 없었다. 황 작가만의 남다른 호기심과 삼국시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아니었다면 결코 접할 수 없는 독창적인 역사 여행 아이템이라 하겠다.

삼국사기 vs 삼국유사
우리에게 익숙한 만파식적 이야기는 대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삼국사기’의 기록은 저자인 김부식조차 괴이하다며 믿을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상당히 허구적인 면이 있다. 반면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이러한 괴력난신적인 요소를 신성한 사건으로 해석하며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문헌적 배경을 바탕으로 저자 황윤은 왜 한반도 사람들이 중국의 신화에만 의미를 부여하며 중요하게 여기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괴력난신적인 표현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최대한 추적하고 재해석해 보겠다는 의지로 역사 여행을 추진한다.

경주에 머무는 용(龍)의 흔적들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수중릉 문무대왕릉에서 출발한 만파식적은 용을 비롯한 설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용이 등장하는 1차 만파식적부터 대나무와 용이 묘사된 용뉴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역사와 설화를 넘나들며 경주를 감싸는 용의 스토리텔링과 조우하게 된다.

경주를 걷다 보면 대왕암과 이견대, 감은사지, 성덕대왕신종 등 설화 속에 묘사된 장소들에 머무르게 된다. 한때 문무왕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이 되겠다며 자처한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경주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신라인들이 문무왕의 업적과 삼한일통에 대한 자부심을 되새기며 호국대룡, 즉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실천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경주를 걸으며 만나는 이야기들은 우리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진지함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설화를 역사로 고증하는 즐거움
황윤과 함께하는 역사 여행은 독자 스스로가 고고학자가 된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만파식적 설화에서 시작된 이번 여행에서 놓치면 아까운 포인트가 있다. 신문왕릉과 효소왕릉은 조선 영조 때 잘못된 근거로 묘의 주인을 찾는 바람에 엉뚱한 곳으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의 공력과 연구로 추적해낸 오직 황윤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경주 왕릉의 진짜 주인 찾기를 보여주는데 고고학적 즐거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함께하는 역사 여행에서는 독자가 직접 하나하나 살펴보고 비교 고증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디자인의 변천으로 살피는 석탑을 보는 안목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한 역사 여행을 통해 고대신라 시대의 문화와 예술, 정치력까지 살펴볼 수 있다. 저자 황윤과 함께한 이번 여행에서는 감은사지삼층석탑과 황복사지삼층석탑의 특징과 변천 과정을 직접 살펴보며 안목을 더했다. 감은사지삼층석탑은 군복을 입은 장군 느낌을 주며, 황복사지삼층석탑은 비단 옷을 입은 사극 속 아이돌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또한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황복사지삼층석탑의 금동 사리함과 불상에 대한 설명을 통해 예술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문무왕 시절 신라의 독자적인 외교와 정치력을 추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삼층석탑이 어떤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보는 고고학적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감은사지석탑을 시작으로 고선사지삼층석탑, 불국사 석가탑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디자인적 변화 등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여행은 독자가 직접 고고학자가 된 듯한 느낌을 주며 놓치기 아까운 포인트를 찾아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조선희 기자 hee31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