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테스트베드 조례 운영하는 정용래 유성구청장 인터뷰
2015년 7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시장실. 카를로스 히메네이 당시 시장과 임용택 당시 한국기계연구원장이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임 전 원장은 이 카운티가 도입할 도시형 교통수단으로 기계연구원의 자기부상열차를 제안한 상태였다. 하지만 히메네이 시장의 입에서 실험동물이란 의미의 ‘모르모트(marmotte)’란 말이 나오자 임 원장은 고개를 떨궜다. 이 말은 우리가 당신네 제품의 테스트베드(test-bed)가 될 수는 없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히메네이 시장은 당시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 교통수단으로 기계연구원 자기부상열차를 선택했다가 트램으로 바꾼 것을 보고받은 듯했다. 임 전 원장이 펴낸 ‘디테일 경쟁시대’의 자기부상열차 비화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상용화되려면 실증과 이를 위한 테스트베드가 필요하다. 임 전 원장은 “기계연구원 자기부상열차는 국산화 비율이 97%를 넘으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이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외면으로 글로벌 공략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실증은 기능·성능을 확인하는 시험 가동, 데이터 축적, 평가를, 테스트베드는 신기술과 서비스, 제품의 성능·효과를 시험하는 환경과 시스템, 설비를 말한다.
과학기술계의 이런 개탄의 목소리들이 점차 높아지던 2020년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는 대전 유성구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테스트베드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그 이후 유성구의 벤처·중소기업과 과학기술 연구기관들은 이를 활용해 상용화에 성공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발전시켜왔다. 성과와 반응에 고무된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이달 안으로 테스트베드 지원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의 날을 이틀 앞둔 19일 과학기술 지원군을 자임하고 나선 정 구청장을 유성구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집무실 책장에는 ‘과학혁명의 구조’, 메타버스 스쿨혁명‘, ’특이점이 온다’ 등 과학기술 서적들이 많이 보였다. 다음은 정 구청장과의 일문일답.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은 1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덕연구개발특구를 가진 지자체로서 과학기술 지원군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행정에 접목하고 이를 통해 지역을 미래형 스마트 도시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성구 제공
―전국 최초로 테스트베드 조례를 제정해 운영중이다.
“2019년 스타트업 파크 공모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좋은 기술들이 개발돼도 사업화 하려면 실증이 선행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테스트베드가 필요하다는 다는 것을 절감했다. 하지만 벤처·중소기업이나 연구기관은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기술이 시험적으로 활용되는 공간과 잠재적 소비자인 인적 자원을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20년 지자체 첫 테스트베드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는데 반응이 좋다. 과학기술의 역량은 지역사회의 역량이다.”
―지원 대상은 누구인가.
―테스트베드 조례의 단초가 된 사업이 있다는데…
“2016년 시작한 ‘정보통신기술(ICT) 경로당’ 사업이다. 유성구노인복지관과 16개 경로당을 화상회의시스템으로 연결해 강연 기회를 대폭 늘렸다. 화상회의시스템을 개발한 벤처기업 W사는 이를 계기로 제품을 발전시켜 조달청 등록을 추진 중이다. 테스트베드를 목적으로 시작한 사업은 아니었는데 그 계기를 제공했다. 유성구는 이를 계기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모를 거쳐 2021년 이 사업을 스마트경로당 사업으로 확대됐다. 올해까지 130개 경노당에 각종 스마트 설비를 갖춰 교육, 상담, 건강관리, 컴퓨터 교육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테스트베드 사업이 주민 생활에도 도움이 되나.
“U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무단투기 예방시스템’을 관내 상습 무단투기 지역 5곳에 설치했는데 주민들의 확대를 원한다. 행동인식 기술로 무단 투기자들을 식해 경고 음성을 내보내기 때문에 무단 투기가 줄었다. 무단 투기행위 영상을 보내주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과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된다.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 설치한 M사의 ‘상지재활로봇’은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재활치료를 돕느다. 이 로봇을 활용한 30대 아들이 팔 움직임이 좋아졌다며 눈물의 감사 인사를 전해온 경우도 있었다.”
대전 유성구가 테스트베드 사업으로 도입한 ‘인공지능(AI) 기반 무단투기 예방시스템’. 테스트베드 사업은 벤처기업의 기술 상용화를 돕기도 하지만 주민들의 생활 편의도 돕는다. 유성구 제공
“상지재활로봇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금산군과 대전 동구청 등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경로당 사업를 보기 위해 부산시 등 10여개 지자체들이 벤치마킹을 다녀갔다. 얼마 전 지자체장 보좌역 모임인 목민관 클럽의 워크숍에서 테스트베드 전담조직과 운영 방식에 대해 브리핑을 했는데, 관심이 많았다. 수도권 지자체를 중심으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
―테스트베드 지원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데…
“테스트베드 조례가 없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전국의 벤처·중소기업이나 연구기관에 서비스를 확대하려고 한다. 혁신 기술은 주민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구정 전반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를 계기로 도움을 받은 벤처·중소기업이나 연구기관이 유성구로 이전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유성구에 대덕특구가 있다. 다른 과학기술 지원 시스템도 있나.
“대덕특구에는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 두뇌들이 밀집해 있다. 지자체가 당연히 파트너십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 미래전략과 디지털혁신팀이 테스트베드 사업을 추진하고 교육과학과 과학협력팀이 대덕특구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한다. 유성과학축제, 과학소풍, 과학캠프, 과학교실, 유성으로 떠나는 과학여행 등 다양한 과학행사르 열고 있다. 대덕특구에서는 수시로 과학강연이 열리는데 해당 부서를 중심으로 자주 찾아가 경청하면서 과학기술 마인드를 키운다.”
대전 유성구의 ‘SF 과학축제. 유성구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는 지자체로써 다양한 과학축제를 열고, 과학기술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다. 유성구 제공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신기술 전시회(CES)에 직원들과 다녀왔다. 첨단기술의 요람인 대덕특구 지자체로써 글로벌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국보고회를 통해 전 직원에게 디지털 헬스케어와 모빌리티 혁신, 메타버스 등 최신 기술 변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거대한 과학기술 혁신의 흐름을 목격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행정에 접목하고 이를 통해 지역을 미래형 스마트 도시 발전시켜 나갈 구상을 세우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