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도쿄 특파원
《11일 일본 나가사키현 고토시. 한국 거제도(380㎢)보다 조금 넓은 420㎢ 면적에 3만7000여 명이 살고 있는 섬이다. 작은 섬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현청 소재지 나가사키시에서 배로 3시간 40분, 소형 비행기로 40분을 가야 할 정도로 육지에서 떨어져 있다. 어업과 농업을 주로 하는 한적한 이 섬 도시에서는 일본 정부가 야심 차게 시작한 비대면 원격의료가 본격 시행되고 있다. 진료용으로 개조한 승합차가 섬 구석구석을 돌면서 환자를 태우면 모니터 너머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다. 차로 갈 수 없는 더 작은 섬에는 드론으로 약을 배송하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마에다 다카히로 나가사키대 의대 낙도의료연구소장은 “이동식 원격의료 서비스는 초고령화 선진국의 고민을 해결하는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원격의료 서비스가 가동되고 있는 이 섬에 가 봤다.》
모바일 클리닉 차량, 섬 곳곳서 진료
고토시는 1955년 주민 9만 명을 넘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인구가 그 절반 아래로 줄어든 전형적인 시골 섬이다. 65세 인구 비중이 40.8%로 의료 수요가 많다. 한국 여느 낙도(落島)보다는 규모가 크고 의료 요건도 인구 238.4명당 의사 1명으로 일본 평균(인구 267명당 1명)보다 좋다. 다만 의사 및 병원 대부분이 나가사키시 등으로 향하는 항구, 공항 인근에 몰려 있고 수천 명씩 거주하는 작은 섬이 주변에 흩어져 있어 접근성 격차가 크다.오자키 미치에 고토시 건강정책과 부(副)과장은 “고령인 주민 상당수가 만성 질환을 앓고 있어 정기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내버스가 하루 두세 편에 불과한 지역이 대부분이고 작은 섬들은 교통이 더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토시는 올 1월 이동식 원격의료를 위한 모바일 클리닉을 도입했다. 승합차를 개조한 원격의료 차량을 운용해 섬 곳곳을 돌며 환자를 직접 찾아간다. 흔히 원격의료라고 하면 집에 있는 PC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상통화 진료를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고토시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방식을 택했다. 섬 지역 고령자 특성상 고토시 노인들은 비대면 원격진료를 받을 만큼 PC나 스마트폰 조작이 능숙하지 않아서다.
모바일 클리닉 차량의 내부 설비는 예상보다 단출했다. 혈압 측정기, 청진기 같은 간단한 의료 기구와 책상, PC 모니터 그리고 인터넷 통신장비 정도가 갖춰져 있다. 원격진료를 맡은 의사 노나카 후미아키 나가사키대 의대 조교는 “모바일 클리닉은 만성 질환 어르신에 대한 기초 진료가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구급차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카메라로 질환 부위를 확인하거나 청진기 소리를 확인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모바일 클리닉 차량 도입에 들어간 예산 4800만 엔(약 4억8000만 원)은 중앙정부 ‘디지털 도시 구상 사업’ 예산과 ‘지역 의료 체계 강화’ 교부금을 받아 해결했다.
일본 고토시 원격의료 차량 ‘모바일 클리닉’에서 간호사(왼쪽)와 고토시 공무원이 모니터를 통해 비대면으로 진료받는 모습을 시연해 보고 있다. 노트북 화면과 환자 앞 모니터 너머 의사가 환자 상태를 체크하며 진단하고 약을 처방한다. 고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고토시 원격의료 차량 ‘모바일 클리닉’ 앞에서 의사가 모니터 너머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시연하고 있다. 평소에는 근무하는 병원에서 차량에 탑승한 환자를 원격으로 진료한다. 고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우라 시게오 고토의사회 회장은 “일본 의사들도 처음에는 반대가 컸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낙도 진료소에 드론으로 약 배송
일본 고토시 드론 업체 소라이나 직원들이 발사대에서 배송용 드론을 점검하고 있다. 이 드론은 종이상자에 담긴 의약품 등을 인근 섬 진료소까지 배송한다. 고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고토시는 가장 큰 섬인 후쿠에섬과 인구 수십∼수천 명의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다. 후쿠에섬은 항구와 공항이 있고 면적도 넓어 교통 여건이 괜찮지만 다른 지역은 낚싯배 수준의 작은 배에 통행을 의존하고 있다. 여객선 운항을 늘리거나 다리를 놓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남은 선택지는 드론이었다.
후쿠에섬 항구에서 차로 10여 분 가면 소라이나가 운영하는 드론 격납 시설이 있다. 드론 10여 대가 놓인 창고 한쪽에 드론 발사대가 약 2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설치돼 있다. 가로세로 약 50cm, 높이 약 20cm의 단단한 종이상자에 최대 1.5kg까지 물건을 넣고 작은 낙하산을 매달아 실은 뒤 드론을 띄운다. “스리, 투, 원, 발사!”
시속 100km로 반경 80km까지 비행할 수 있어 고토시 전역 배송이 가능하다. 시간당 강우량 50mm, 초속 14m의 강풍에도 날 수 있어 웬만한 악천후는 견딜 수 있다. 회사 측은 “의약품뿐 아니라 계란이나 과일, 병 제품도 배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고토시 후쿠에섬에서 작은 섬들에 있는 진료소에 약을 공급하는 ‘B2B’ 서비스를 하고 있다.
드론 배송은 지난해 실증 실험을 거쳐 올해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상자 1개 배송 비용은 기본요금 1000엔(약 1만 원)이다. 현재는 기술 실험을 넘어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가사키현 고토시에서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