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테니스를 체험해 보고 있는 김진혁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선수단장. 대한장에인체육회 제공
여자 휠체어테니스 국가대표 박주연(43·스포츠토토코리아)이 지난달 23일 오후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 테니스장에서 농담 섞인 덕담을 꺼냈다. 그러자 코트 반대편에 있던 김진혁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선수단장(43)이 “깐풍기 때문에 하는 말 아니냐?”며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이날은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이사인 김 단장이 국가대표 선수단 71명에게 깐풍기 같은 특식을 제공하며 선수단과 본격적인 스킨십을 시작한 날이었다.김 단장은 2월 15일 열린 장애인체육회 이사회에서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10월 22~28일) 선수단장에 임명됐다.
김진혁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선수단장.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여러 차례 어려움을 딛고 자리를 잡아가던 중 마주한 불운이었다. 김 단장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자궁암을 앓던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다시 3년 후 아버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다섯 살부터 어머니의 여동생인 이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부모처럼 따랐던 이모 역시 2000년 간암으로 당시 스물한 살이던 김 단장의 곁을 떠났다.
김 단장이 마음을 다잡은 건 2003년 5월 군 제대 이후였다.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기에 서울 성북구 중식당에서 배달을 시작했다.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 하루 13시간을 일했다. 집에 돌아와 오후 11시쯤 잠이 들면 다음 날 오전 3시 한밤중에 일어나야 했다. 중식당 출근 전까지는 새벽에 신문 배달을 했기 때문이다.
바쁜 삶 속에서도 김 단장은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배달 일은 사업 분석에 특화된 일이었다. 음식 맛이 좋아도 망하는 식당, 맛은 별로인데 줄 서는 식당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배달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주방장이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살펴볼 수도 있었다. 2007년부터는 주방 보조 일도 병행하며 요리 비결을 쌓았다.
김진혁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선수단장.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김 단장은 “사업을 하면서 성공하려면 좋은 교육과 환경 등 주변의 지원이 참 많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런 지원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역경을 이겨내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돕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내가 장애인아시아경기 단장직을 받아들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더 큰 평수의 집에도 살아보고 더 좋은 차를 타보기도 했다. 처음에 행복하긴 했는데, 돈을 더 벌수록 계속 좋아지진 않았다. 대신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식당 직원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가장 좋았다”며 “나와 같이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더 빛날 수 있도록 도우면 나도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김진혁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선수단장.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외식 프랜차이즈 대표라는 점도 김 단장의 차별화된 강점 중 하나다. 음식을 매개로 선수단의 마음속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광장에서 열리는 휠체어농구 KBS배 어울림픽 대회에서도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선수단과 소통할 계획이다.
이천=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