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양갱은 자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와인과 함께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_출처 : Yanggang Wine TV
양갱은 유튜브뿐만 아니라 온라인 교육 플랫폼 클래스101·홈앤클래스를 비롯해 삼성·현대·LG 등 여러 기업 강연을 통해서도 실전 와인 테이스팅 기술을 전하고 있다. 2021년에 그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와인 품평회인 ‘아시아 와인 트로피(Asia Wine Trophy)’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작년엔 소믈리에와 와인 수입사 사원 그리고 와인숍 대표로서 쌓아온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을 출간했다.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나누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는 양갱. 그는 와인을 순수하게 즐기는 와인 덕후다.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 와인을 한 병사요. 치즈도 좀 사고. 그 만 원짜리 와인을 먼저 마시고, 그걸 마셔요. 그럼 마실 줄 알게 될 겁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하도영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선물 받은 고가의 와인을 ‘가져가 마시라며’ 건넨다. 와인 마실지 모른다는 운전기사에게 마시는 방법도 일러준다. 저렴한 것을 마시고 난 뒤 마시라는 것. 명쾌하다. 하지만 친절하진 않다.
유튜브 영상 촬영은 주로 양갱이 운영하는 와인숍에서 진행된다. 성동구에서 운영 중이던 그의 와인샵은 강남으로 이전해 5월 오픈 예정이다_출처 : Yanggang Wine TV
양갱 와인 디렉터로 불러달라. 와인 리스트를 만들고 구매와 판매를 한다는 점에선 소믈리에와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어느 한 레스토랑의 소속이 아니라, 와인숍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디렉터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
소믈리에로 일했던 것으로 안다. 소믈리에는 어떤 일은 하는 사람인가?
2019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 첫 영상에서 양갱은 다양한 와인 소개와 리뷰는 물론 마시고 즐기는 법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_출처 : Yanggang Wine TV
가장 큰 차이점은 취향의 노출 여부다. 와인숍에선 가감 없이 취향을 드러내지만 유튜브에선 아니다. 매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프랑스 와인이다. 프랑스 와인을 좋아하고 자주 마시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로 일할 때 배운 점이 있다. 직접 마시고 맛을 느끼지 않는다면 좋은 추천을 할 수 없고 판매하기도 힘들다는 것. 프랑스 와인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자 타협하고 싶지 않은 취향이다.
유튜브에선 나보단 대중의 취향이 먼저다. 그래서 와인숍과 달리 가격이 저렴한 와인들을 주로 소개하는 편이다. 누구나 쉽게 사서 마실 수 있는 그런 와인들.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와인들에 대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콘텐츠에 깊이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전문성이 떨어져서 이런 콘텐츠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와인을 마실 때 가장 중요한 건 접근성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맛이 있어야 계속 마시게 된다. 가격과 구매에도 거리낌이 없어야 된다. 퀄리티 구분은 그 다음이다. 앞으로도 유튜브 콘텐츠는 입문자의 눈높이에 맞출 것이다. 더 깊이 있는 셀렉션은 와인숍에 준비돼 있다.
[아주 사소한 궁금증]
Q. 가능하다면 와인은 대용량으로 사는 게 좋나?
A. 같은 와인이라도 작은 병보단 큰 병에 들어있는 와인이 더 맛있다. 이는 산소의 양 때문이다. 스탠더드와 매그넘에 들어간 와인의 양은 2배 차이가 나지만 산소의 양은 같다. 즉, 매그넘에 와인을 병입할 때 들어가는 산소가 더 적다. 그래서 산화 속도도 더디다. 발효주는 산소와 접촉하면서 맛이 변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발효주의 일종인 와인의 맛 또한 병입할 때 들어가는 산소의 양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용량이 커질수록 병도 커지는데 생산 비용과 물량 확보의 문제로 구하기 쉽지 않다. 시중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은 0.75L(스탠더드)다. 와인병은 용량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보르도 기준에 따른 사이즈별 명칭은 아래와 같다.
그렇지 않다. 개인이 운영하는 와인숍은 대개 와인을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곳이다. 그 취향은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 확률이 높을뿐더러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주변의 입문자들에겐 대중적인 맛과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이 많은 대형 마트를 추천한다. 와인을 계속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와인숍으로 가게 될 테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자연스레 옮겨 간다는 건 무슨 뜻인지.
20년 가까이 와인을 즐겨 왔기에 마트에서 파는 와인은 대부분 마셔봤다. 새로운 걸 찾다 보니 판매량과 무관하게 리스팅하는 와인숍들로 가게 됐다. 입문 단계를 지나고 깊게 파고들다 보면 맛 이외의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게 되는 시점이 있다. 와인숍마다 다른 리스팅을 보며 매장 운영자의 각기 다른 취향을 살펴보는 재미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득템하는 기쁨도 있다.
최근 미국을 다녀왔는데 현지에 사는 지인을 통해 나파 밸리의 와인숍 하나를 추천받았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수확은 컸다. 살베스트린 닥터 크레인 카베르네 소비뇽(2016 Salvestrin, Carbernet Sauvignon, Dr.Crane Vineyard)을 약 59달러(약 7만 원) 살 수 있었으니까. 인터넷 최저가보다 20달러는 더 저렴했던 것 같다. 참고로 미국의 와인숍은 시간이 흘러 와인이 가격이 올라도 가게 주인이 처음 사왔던 가격 그대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해외에선 국내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와인을 접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건 포도밭이다. 널리 알려진 유명한 밭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면 누가 만들어도 평타를 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와인 초보자에 초점이 맞춰진 양갱의 유튜브 채널을 살펴보면 와인숍 관련 영상(5개)보다 마트 와인(60개 이상)에 대한 콘텐츠가 더 많다. 양갱은 초보자가 와인을 사기에 마트가 더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_출처 : Yanggang Wine TV
대형 마트에서도 가능하다. 평소보다 저렴하게 파는 시기가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있다. 주로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번씩 와인 장터가 열린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거나 결제하는 카드에 따라 추가 할인 금액이 달라지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지난달 홈플러스 행사에선 10만 원 이상 사면 2만 원 할인을 받을 수 있었는데, 20만 원짜리 와인 한 병을 사도 할인은 그대로였다. 질보다 양을 추구한다면 이런 행사에선 10만 원 단위로 나눠서 구매하는 게 이득이다.
행사 기간에 소량으로 풀리는 와인들도 있는데 가격을 떠나 주목할 만하다. 이번 달 롯데마트 행사에선 마세토 2019(Masseto 2019)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은 1백 20만 원. 5병만 판매된다고 들었다. 메를로 품종으로 만들어진 마세토는 가장 비싸고 유명한 이탈리아 와인 중 하나다. 정복감을 자극하는 이런 와인들도 대형마트 행사에 종종 등장한다.
라벨이 불량인 와인을 사는 것도 방법이다. 라벨에 얼룩이 있거나 일부분이 찢긴 제품들은 이동 과정에서 생긴 문제이니 내용물엔 이상은 없다. 비싼 와인일수록 라벨이 손상됐을 때 감가가 심하다.
출처 : Yanggang Wine TV
다른 병과 비교했을 때 내용물이 더 적다거나 화이트 와인의 경우 색깔이 갈색처럼 탁하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라벨에 넓은 지역이 쓰여있다면 이 또한 추천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호주에서 만들어진 시라즈 와인을 살 때, 라벨에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가 쓰여있는 와인은 피하라. 이는 드넓은 호주 남쪽 어딘가에서 나오는 포도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저렴해도 와인의 품질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나 맥라렌 베일(McLaren Vale)처럼 생산지를 더 좁게 밝히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입문자라면 스스로 고르기보단 도움을 받는 편이 더 안전할 수 있다. 와인 관련 앱에서 제품의 평점을 찾아보는 게 가장 수월할 텐데,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유명한 앱 중 하나는 비비노다. 검색부터 가격 비교까지 가능한 비비노는 유용하다. 하지만 이곳엔 아마추어의 평가들이 더 많다. 그리고 한국보단 해외 사용자들이 더 많다. 주관적이고 우리 입맛과는 맞지 않은 와인에 높은 점수가 매겨져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차라리 매장에 가서 가장 맛있었던 와인을 말하고 비슷한 걸로 추천받는 편이 더 좋다.
매장 직원에게 추천을 부탁할 때 금액이나 생산 국가만으로 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건 신발 가게에 가서 5만 원대 신발 중 괜찮은 걸로 추천해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모호하기 때문이다. 신발 형태가 하이인지 로우인지, 컬러는 레드인지 블랙인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더 좋은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추가로 많진 않겠지만 올드 빈티지 와인을 찾는 이들도 있을 텐데, 경험 상 빈티지가 15년 이내의 와인이 ‘뻑’날 확률이 적었던 것 같다. 모든 와인에 적용된다고 볼 수 없으나 실패할 리스크를 줄이는 안전한 방법 중 하나다.
[아주 사소한 궁금증]
Q. 와인에서 구대륙과 신대륙은 무엇을 의미하나?
A. 와인은 생산된 지역에 따라 구대륙(Old World)과 신대륙(New World) 와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구대륙 와인은 오랜 시간 와인을 만들어 온 유럽 국가들에서 생산된 제품을 지칭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있다. 프랑스 와인은 ‘명품’이다. 업계 최고 수준의 재료와 장인의 손맛이 어우러진. 이탈리아 와인은 ‘하늘의 별’ 같다.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 포도 품종이 많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구대륙의 가성비’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비해 떨어지는 인지도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맛은 뒤처지지 않는다. 구대륙 와인은 대체로 과하지 않은 절제된 스타일과 클래식함을 특징으로 한다. 포도를 수확한 해(빈티지)가 신대륙에 비해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국, 칠레, 호주 등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신대륙 와인이다. 지역에 따른 편차가 있지만 일조량이 높아서 신대륙 와인은 높은 알코올과 바디감을 보여준다. 미국 와인은 ‘알파고’로 부르고 싶다. 치밀한 분석으로 선정된 땅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 만든 과학적인 와인이라서. 칠레 와인은 ‘다이소’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 물론 맛도 좋다. 그리고 호주 와인은 ‘필승’이다. 뭘 마셔도 기대 이상이다. 실패하기 어려운 와인이다. 신대륙 국가들은 포도 재배 면적이 넓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와인들을 많이 생산한다. 동시에 미국과 호주가 각각 프랑스의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 품종을 벤치마킹하고 신기술을 접목해 와인을 만드는 것처럼 가격 대비 맛과 품질이 뛰어난 제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 있는 그랑크뤼 포도밭,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를 방문하기도 했던 양갱. 로마네 콩티 와인은 고가 와인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한다. 출처 : Yanggang Wine TV
레드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피노 누아가 있다. 피노 누아는 섬세하다. 병충해에 약하고 산출량이 적으며 잘 맞는 기후와 토양이 아니면 재배가 어렵다. 발전된 기술 덕분에 점점 더 많은 곳에서 피노 누아를 재배하고 품질을 높이고 있지만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가 최고로 평가받는다. 타닌이 적고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 중 하나인 샤르도네의 고향도 부르고뉴다. 이 품종이 열리는 나무의 활력은 왕성해서 서늘한 곳부터 더운 곳까지 기후에 관계없이 잘 적응하는 편이다. 샤르도네 품종만 보자면 중성적이라 자칫 평범한 와인이 되기 쉽다. 그러나 테루아, 양조자, 오크 숙성에 따라 최고가 될 수도 있다. 몽라쉐(Montrachet)나 샤블리(Chablis)의 화이트 와인처럼. 주로 사과와 파인애플 같은 과실향과 꿀 그리고 빵 등 다양한 향을 풍긴다.
와인을 간단하게 구분한다면, 레드·화이트·로제 와인일 텐데 각각 어떤 스타일인가?
레드 와인은 타닌이 있고 여러 과실 향을 지닌다. 화이트 와인은 타닌이 아주 적거나 없는 편이다. 허브와 채소의 향을 풍기며 산미가 높다. 로제 와인은 약간의 타닌과 산미가 있다. 화이트 와인보다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색깔별로 맛이 다른 만큼 궁합이 맞는 음식도 상이하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음식의 색깔에 와인을 맞추면 평균은 간다. 다만 꼭 비싼 와인일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스테이크를 먹을 때, 약간 단 맛이 도는 호주 시라즈 와인만으로도 충분하다. 해산물도 마찬가지. 굳이 프랑스의 소비뇽 블랑이 아니어도 된다. 뉴질랜드 와인도 괜찮다. 하지만 샤르도네는 피하는 것이 좋다. 비린내가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샤르도네는 다른 화이트 와인 품종과 달리 종종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해산물의 비린내가 더 증폭될 수 있다. 모든 샤르도네가 해당되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오크통 숙성 여부를 구분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색깔로 맞추기 어려운 음식이 있다면 연어와 참치다. 해산물이면서 붉은 색이니까. 이런 경우엔 로제가 딱이다. 레드 와인을 꼭 마셔야 한다면 피노 누아를 추천한다.
출처 : Yanggang Wine TV
와인을 구성하는 타닌, 산도, 바디, 당도, 알코올을 알아두면 좋다. 타닌은 와인을 마실 때 느껴지는 떫은 맛인데, 와인색이 짙을수록 타닌은 강한 편이다. 와인이 숙성될수록 타인은 약해진다. 타닌은 단백질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어 타닌이 강한 와인일수록 육류와 잘 맞는다. 와인에서 산도는 상큼함이다. 산뜻하거나 시큼한 맛이 나는 이유는 산도 때문이다. 그래서 기름기나 향이 강한 음식과 함께 산도가 어느 정도 있는 와인을 마시면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산도가 높을수록 와인의 바디는 약하고 덜 달게 느껴진다.
바디는 입 안에서 느껴지는 와인의 무게다. 연하고 진함의 정도를 의미한다. 강할수록 풀 바디, 가벼울수록 라이트 바디로 구분한다. 당도는 단 맛이다. 와인에 당분이 많을수록 점성은 진해진다. 풀 바디에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반대로 산도는 당도가 많을수록 약해진다. 당과 산은 반비례 관계다. 알코올은 말 그대로 술.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와인의 바디는 무거워진다.
와인의 향과 맛을 보다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모든 것이 그렇듯 왕도는 없다. 와인을 마실 때마다 나름대로 향과 맛을 구분하고 기록하려고 노력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와인에서 느껴지는 향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과 연관 지어 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꼭 좋은 냄새일 필요는 없다.
마실 땐 목으로 바로 넘기지 말고 입안을 코팅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글할 때처럼 입안 전체에 머금고 느끼는 것이다. 이때 느껴지는 향은 코로 맡았던 것과 다르게 전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마실 때도 와인을 입안에 머금는 것은 실례가 아니다.
미각과 후각만으로 와인의 맛과 향을 판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포도 품종과 생산 지역 별로 두드러지는 특징을 미리 파악해 두고 마시는 것은 좋은 접근이다.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저렴한 와인을 많이 마셔보고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체로 비싼 와인은 구성요소들의 밸런스가 좋고 피니시가 길다. 그래서 맛있다고 느끼게 된다. 여기서 맛은 단순히 달거나 신 맛이 아니라 계속 마시고 싶게 하는 술의 복합적인 매력이다. 보다 깊고 섬세하게 와인의 향과 맛을 느끼고 싶다면 다양하게 많이 마셔보는 방법밖엔 없는 것 같다.
출처 : Yanggang Wine TV
마시기 좋은 온도를 음용 온도라고 한다. 얼추 정해진 틀이 있지만 엄격한 건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온도를 찾을 때 기준점으로 삼으면 된다. 바디감이 무거운 레드 와인은 15~18℃가 적절하다. 까베르네 소비뇽, 시라, 메를로가 여기에 속한다. 피노 누아나 네비올로처럼 바디감이 가볍다면 15℃에 가깝게 마시면 된다.
화이트 와인은 8~12℃ 사이. 마찬가지로 바디감이 가벼울수록 음용 온도를 낮춘다. 소비뇽 블랑과 리슬링이 8℃에 가깝게. 스파클링 와인은 빈티지로 판단하면 되는데, 적정 온도는 5~8℃다. 숙성이 10년 이상 진행된 스파클링 와인이라면 8℃, 빈티지가 없다면 더 차갑게 마시는 걸 추천한다.
마실 때마다 온도계를 가지고 온도를 확인할 수는 없을 텐데.
대략적으로 온도를 가늠하는 법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라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직사광선이 피해 실온에 보관된 스테인리스로 만든 냄비를 만졌을 때 느껴지는 약간 서늘한 온도는 레드 와인의 적정 음용 온도와 비슷하다. 화이트 와인의 적정 음용 온도는 편의점 (문이 없는 오픈된)냉장고에 비치된 인스턴트 커피 음료를 집었을 때의 온도로 기억하면 된다.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 편의점 냉장고 문을 열고 탄산음료를 집었을 때의 느낌이 온다면 적정 온도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면 된다. 보관할 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빛과 진동이 없는 곳이 좋다. 바로 마시지 않고 숙성이 목적이라면 12~14℃ 사이가 적정 온도다.
와인 종류에 따라 마시기 적합한 와인 잔도 달라지는데, 이는 와인별로 상이한 특성과 속성을 더 잘 이해하고 맛보기 위해서다_출처 : WINE FOLLY
와인 오프너와 잔은 필수다. 와인 오프너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코르크스크루다. 괜찮은 제품을 꼽자면 풀텍스(Pulltex)의 코르크스크루. 가격대는 5만 원~8만 원대다. 풀텍스의 코르크스크루 나이프는 굴곡진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동그란 와인병 입구에 쌓인 포일을 자르는 데 용이하다. 저가 제품의 나이프는 대체로 직선 형태다.
와인 종류에 따라 잔을 달리 사용하는데, 대부분의 레드 와인은 넓고 둥근 볼(Bowl)의 잔에 마시면 된다. 이보다 볼이 작은 잔은 화이트 와인에 적합하다. 기포가 있는 스파클링 와인은 얇고 긴 형태의 잔에 마시면 좋다. 화이트 와인 잔을 사용해도 괜찮다. 잘토(Zalto) 와인잔은 나름 합리적인 가격(8만 원대)과 경량성을 갖춰 인기가 많다. 이보다 더 저렴한 걸 찾는다면 2만 원대의 슈피겔라우(Spiegelau)나 쇼트즈위젤(Shott zwiesel)의 와인잔을 추천한다.
지금까지 마신 와인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샤또 페리에르(Chateau Ferriere).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등 여러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강남의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로 일할 때 서빙하던 손님을 통해 처음 접했다. 빈티지는 1996년, 그랑 크뤼 3등급 정도 되는 비싸지 않은 와인이었다. 와인에 대한 경험이 많진 않았지만 와인을 처음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날 따라 떫은 맛 대신 먼저 느껴진 건 초콜릿과 커피 향이었다. 포도로 만든 술에서 나는 이색적인 향은 깊은 여운을 남겼고, 그 뒤로 와인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커졌다. 와인에 대한 감각을 깨운 술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프랑스 보르도에서 생산된 레드 와인을 가장 좋아한다. 숙성의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와인이라 생각한다. 비싸서 자주 못 마시지만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역에서 만들어진 피노 누아도 좋아한다. 피노 누아는 프랑스 와인의 정점 같다.
로제 와인이 무난하다. 로제 와인은 샌드위치처럼 가벼운 음식과 궁합이 좋다. 핑크빛 컬러는 로맨틱한 분위기 연출에도 좋다. 주의할 점은 온도다. 10℃ 이내가 마시기 좋은 온도다. 휴대용 아이스버킷에 약간의 얼음과 시원한 물을 넣어 음용 온도를 맞추는 수고가 필요하다.
온도와 잔은 와인을 마실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들이지만 나갈 때 이런저런 용품 다 챙기는 게 귀찮을 수도 있다. 특히 유리잔이 그렇다. 이럴 땐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얼음컵에 화이트 와인을 따라 마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작년 여름에 한강 공원에서 플라스틱 얼음컵으로 칠레 화이트 와인을 마신 적이 있다. 평가가 목적이 아닌 이상 항상 규칙과 외부의 시선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함께 마시는 상대일 테니까. 와인은 그저 거들 뿐이다.
이순민 인터비즈 기자 royalb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