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영웅 기념비 앞.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폴란드 대통령, 이스라엘 대통령과 나란히 헌화한 뒤 머리를 숙였다. 이곳은 1943년 바르샤바의 유대인들이 나치의 강제수용소 이송에 저항하다 1만3000여 명이 사망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에 사죄하면서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장소이기도 하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연설에서 “여러분 앞에 서서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독일인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과거사를 계속 반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이스라엘 러시아 폴란드 등 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들을 방문해 “야만적인 범죄에 깊이 부끄럽다”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수차례 사죄했다. 1985년 “과거에 대해 눈을 감은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한다”고 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 등 독일 정부의 사과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내에서도 과거사는 그만 이야기하자는 여론이 적지 않다. 2020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3%가 ‘이제 나치 시대와 단절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극우세력이 늘면서 신(新)나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독일 정치의 주류인 기민당과 사민당의 지도자들은 과거사에 대해 한결같은 태도를 보여왔고, 이는 유럽 통합의 기틀이 됐다. 이제 나치의 최대 피해국 이스라엘도 “독일은 유럽의 도덕적 나침반”이라고 평가한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언급하더니 한 달도 안 지나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에 대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애매한 표현을 쓰더니 며칠 만에 과거사를 더 왜곡하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내놨다.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일본 방문 당시 “독일이 여러 나라와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일본에 일침을 놨다. 사과하는 시늉만 내면서 과거사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행태는 일본의 국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