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합니다. 건물 출입구의 경사로가, 지하철 역사 내 리프트가, 그리고 저상버스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오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방송의 수어 통역과 자막, 장애인 활동 지원제도가 어느 날 갑자기 공짜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뒤에는 주디스 휴먼(1947∼2023·사진)과 같은 수많은 장애인과 장애인권운동가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있습니다.
194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휴먼은 생후 18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됩니다. 5세 때 브루클린의 한 공립학교 입학을 거절당하는데, 학교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훗날 휴먼은 회고록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경제적, 사회적 고난으로 여겨졌다”고 기록합니다.
휴먼은 그 후에도 세상의 부당한 대우와 계속 마주합니다. 교원자격시험에 응시했지만 필기와 구술시험을 통과하고도 건강검진에서 탈락합니다. 학교에 불이라도 나면 학생들을 제때 대피시킬 수 있겠느냐며 교원자격증 발급을 거부한 당시 뉴욕주 교육위원회의 핑계는 지금 보면 매우 졸렬합니다.
그런데도 법 시행이 지지부진하자 1977년 장애인 동료 100여 명과 함께 재활법 504조의 시행 규정 서명을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 연방정부 건물에서 점거 농성에 들어갑니다. 24일간 계속된 이 농성은 비폭력 연방 건물 점거 기록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긴 농성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장애인 인권법으로 평가받는 재활법 504조는 훗날 미국 장애인법(1990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휴먼은 평생 장애인 인권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 세계은행에서 장애인 정책을 담당했으며, 많은 장애인 단체를 설립하고 운영과 자문역을 맡아 세계 장애 인권운동의 리더로 활약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3월 그의 사망 소식에 많은 이들이 “전 세계 장애인들과 장벽에 부딪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우리의 권리를 위해 주저 없이 싸워 온 휴먼에게 신세를 졌다”고 애도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장애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장애를 얻을 수도 있고, 나이가 들고 병들어 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특히 노인이 되면 최소한 교통약자가 되는 걸 피하기 어렵습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휴먼의 말을 떠올리며 ‘함께하는 세상’을 고민해 봅니다. “누구나 비슷한 일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해줄 수 있는 게 ‘문명’이고 ‘시민의식’입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