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에 20년간 300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이 초입부터 큰 암초를 만났다. 완성된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원자력발전소 5기 분량의 전력이 필요한데 수도권에 그만한 전기를 공급할 발전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호남, 강원 지역처럼 전력 공급이 소비보다 많은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려 해도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주민의 반대가 만만찮고, 건설 비용도 막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용인 클러스터에는 반도체 공장 5개를 비롯해 반도체 설계·부품·장비 분야 150여 개 국내외 업체가 들어설 예정이다.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공장의 경우 전력을 많이 쓰고, 잠시라도 생산라인이 멈출 경우 심각한 손해가 발생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 필요 전력량은 하루 7GW로, 1.4GW짜리 한국형 원전 5기가 생산해야 하는 전력이다. 유연탄 발전소 10기가 모여 있는 충남 당진 화력발전소 총발전량 6GW도 넘어선다.
부족한 전력은 어디서든 끌어와야 한다. 태양광 등 신재생 전력이 과잉 생산돼 원전 출력을 낮추는 일이 발생하는 호남 지역 등에서 남는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용인까지 연결하는 송전선 건설에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게다가 송배전 선로를 건설해야 할 한국전력은 작년에만 32조 원 적자를 내면서 기존 설비를 유지·보수할 자금도 부족하다. 대안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아직 개발 단계다.
가장 기본적인 전력 공급 문제부터 ‘세계 반도체 허브’ 건설이 벽에 부닥치고 있다. 호남부터 수도권까지 해저 송전선로를 깔거나, 나아가 수도권에 발전소를 짓는 등 다양한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대만은 가뭄 때 농민을 설득해 농업용수까지 반도체업체 TSMC에 공급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시동도 걸기 전에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