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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김재천]‘2023년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선언’을 제안한다

입력 | 2023-04-21 03:00:00

尹 한일관계 개선, 인태 전략에 美 국빈 화답
북핵, 위협 급증에도 우선순위 밀리는 현실
‘의지’ ‘시급성’ 담은 한미 공동성명 절실하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4월 26일 한국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미국이 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극진한 예우를 갖춰가며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포괄적 전략 동맹 파트너로서 한국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결단을 내린 윤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도 반영됐을 것이다. 원만한 한일관계는 원활한 한미일 공조의 선결 조건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국이 더 전향적인 조처를 해 한일관계 복원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일관계를 미국이 어렵사리 중재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봉합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했고 징용공 관련 대법원 판결에 수수방관하면서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윤 대통령의 결단을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다.

미국은 작년 말 윤 정부가 선보인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역시 크게 반색하고 있다.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역내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목표와 원칙을 표방하고 특정 국가를 배척하지 않는다. 하지만 윤 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갖추면서 미국과의 전략적 공조를 더 강화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제 걸음마를 내디뎠고, 한일관계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래도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비하고 12년 만에 일본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윤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큰 짐을 덜어냈다.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발생한 도·감청 문제로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감을 가지고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북한 문제와 한반도 통일에 특화된 ‘2015년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한미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과 한반도 통일 문제만을 별도로 다룬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공동성명이 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현재 상황과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된다.

‘전략적 인내’로 불리던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때문에 한국에서는 북한 문제가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역사 문제 때문에 한일관계도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던 박 대통령을 설득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도출했고, 한일관계는 복원의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미 정상이 ‘북한에 관한 성명’을 채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흐름이 있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급증하고 있지만 중국과 대만 이슈, 그리고 우크라이나전 등으로 인해 북한 문제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며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윤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2023년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을 채택해야 한다. 2015년 공동성명에 나온 내용을 상당 부분 반복해도 무방하다. 2023년 성명에서도 북핵 문제의 ‘최고 시급성’과 해결을 위한 양국의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조야에서는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23년 성명에서도 한미는 대북 적대 정책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북한을 절대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 핵에 대한 최종 목표는 여전히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평화적 달성이라고 강조해야 한다.

2023년 성명은 북한의 선제적 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할 수 있음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 정부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 표명을 성명에 담아내야 한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일단 대화에 나오기를 권고하고 있다. 2015년 북한에 관한 성명에는 북핵 문제 외에도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지지”가 명시되어 있다. 양국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고위급 협의를 강화할 것”이라고도 되어 있다. 한반도 통일 담론은 지금 국내외적으로 동력을 상실한 상황인데, 윤 정부는 정상회담을 통일 담론 활성화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양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지만 윤 정부는 한국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만큼은 반드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015년과 마찬가지로 정상회담에서 별도의 ‘2023년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을 도출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