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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독한 형제애[이준식의 한시 한 수]〈209〉

입력 | 2023-04-21 03:00:00


성군의 은덕 하늘 같아서 만물에 봄기운 가득한데, 이 몸만은 우매하여 스스로를 망쳤구나.

제 명도 못 채우고 죗값을 치를 처지, 여남은 가족 갈 데 없으니 네게 누가 되겠지.

어느 청산에든 내 뼈야 묻히겠지만, 언젠가 밤비 속에 너 홀로 상심하고 있으리.

너와 함께 세세손손 형제가 되어, 다음 생에 또다시 긴긴 인연 맺었으면.

(聖主如天萬物春, 小臣愚暗自亡身. 百年未滿先償債, 十口無歸更累人. 是處青山可埋骨, 他年夜雨獨傷神.

與君世世為兄弟, 更結來生未了因.)

―‘옥중에서 동생 자유에게 부치다(獄中寄子由·옥중기자유) 제1수·소식(蘇軾·1037∼1101)



수도 변경(汴京) 어사대(御史臺)의 옥중에 갇힌 시인은 생애 마지막임을 예감하고 아우 소철(蘇轍)과 처자식에게 시 2수를 남긴다. 이 시는 그중 첫 수로 죽음 직전에 쓴 이른바 절명시(絶命詩)라 더없이 암울하고 절절하다. 당시 그의 죄목은 시문을 통해 조정을 비판함으로써 민심 이반을 조장했다는 것. 부패나 역모 따위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갈등이 야기한 재앙이었다. 일종의 필화 사건인 셈이다.

군왕의 은덕이 온 세상에 가득한 지금, 아우야, 내 처신이 우매한 탓에 이제 죽을 처지가 되었구나. 나야 무덤에 들면 그만이지만 나 대신 여남은 가족을 돌봐야 하고, 홀로 남아 상심이 클 너를 생각하니 한없이 마음이 무겁구나. 그래도 내 마지막 바람은 우리의 인연이 대대손손 이어졌으면 하는 거란다. 가족 부양의 책임을 떠넘기는 죄책감, 외로이 남을 아우 걱정. 그러면서도 끈끈한 인연을 거듭 다짐하는 형제애가 애틋하다. 그 후 동파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우가 형의 죄 갚음으로 자기 관직을 내려놓겠다고 상소했고, 개혁파를 이끌었던 정적(政敵) 왕안석마저 사죄(赦罪)를 청원하자 신종(神宗)은 결국 ‘하늘 같은 은덕’을 베풀었다. 시 또한 절명시의 운명에서 벗어났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