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이 칼럼은 5주마다 한 번씩 쓰다 보니 장단점이 있다. 기고 직후부터 여러 사건 사고가 생겨나는데 다음번 5주가 될 때쯤에는 몇 주 전 흥미롭다고 생각한 주제들이 금세 다른 이슈로 덮여서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좋은 점은 그 5주 동안의 시간이 어떤 시각을 부여해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지난 5주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따뜻한 봄을 따라 벚꽃이 만개했었는데 벌써 그 하얗던 꽃잎들이 모두 져버렸으니 말이다.
봄을 맞이해서 필자도 드디어 야외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겨울 내내 집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자전거의 먼지를 떨어내고 드디어 한강 나들이를 나갔다. 겨우내 쌓인 건 먼지뿐만이 아니고 배 둘레에 겹겹이 쌓인 지방 덩어리들도 있어서 겸사겸사 한강으로 출두했다. 한강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사뭇 다르다. 겨울엔 한강의 매서운 강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만 드러낸 채 벌벌 떨고 서 있는 나무들을 배경으로 차갑고 쓸쓸한 모습을 연출해 내지만, 봄이 와서 개나리꽃이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는 많은 사람을 모여들게 만드는 바쁘고 떠들썩한 장소로 변신한다.
필자는 행주산성 방향으로 올림픽대로를 따라 나 있는 자전거길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과 푸른 한강, 알록달록한 봄꽃들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연녹색 나뭇가지들이 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이제 막 동면에서 깨어난 듯 많은 사람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였다. 언뜻 봤을 때는 모두 다 제각각 다른 활동들에 몰두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전거를 한참 동안 타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니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야외 운동에 목이 말랐던 스포츠형 타입의 사람들이다. 나도 이 그룹의 사람들에 포함될 것 같은데, 뒤에서 “지나가겠습니다” 하면서 앞사람을 휙하고 앞질러가는 자전거 선수들, 유니폼을 갖춰 입고 구령에 맞춰 일렬로 뛰어가는 달리기 선수들, 야구며 족구, 농구, 풋살 등 단체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한강 여기저기에 비치된 다양한 운동기구 위에서 몸을 비틀어 대는 1인 운동가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는 흔히 볼 수 없는 취미를 즐기는 독특한 스타일의 사람들이다. 다양한 분야의 취미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이 취미들이 모두 다소 반사회적 성격이 짙은 활동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좁은 도시의 거주 공간 안에서는 절대 즐길 수 없는 취미들이 그것들이다. 더 하부범주화를 해보자면 재즈를 연습하는 색소폰 연주자라든지 끊임없이 두드려대는 장구 연주하는 사람들과 같은 소음형이 있다. 또한 긴 칼을 휘두르는 검도 혹은 펜싱 연습생들, 긴 줄을 머리에 단 모자를 연신 휘둘러대는 상모꾼처럼 넓은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형도 눈에 띈다.
네 번째는 반대로 친사회적 경향의 사람들인데, 2인승 자전거를 다정하게 타거나 서로의 무릎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는 커플들, 넓은 돗자리에 여럿이 둥글게 모여 앉아 주문한 치킨을 뜯어 먹으며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 왁자지껄 떠들며 삼삼오오 걸어가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63빌딩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려고 삼각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각도를 맞추는 가족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마지막은 밤늦게까지 텐트를 쳐놓고 캠핑하는 사람들이다. 예전엔 뉴스에서 한여름 밤 더위를 피해 한강에서 텐트 숙박을 하는 분들을 인터뷰하는 모습들이 종종 방송되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엔 꽤 오랫동안 본 적이 없어서 지금쯤은 아마 멸종위기에 처한 야외 활동이 되어 버린 듯하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