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심의] 노사, 원하는 인상률 마음대로 제시… 36번 심의중 합의는 7차례 불과 임시 계산식 쓰지만 노사 모두 반발 매년 정치논리-정권성향 등에 좌우… 안정성-예측 가능 기준 만들어야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첫 전원회의가 18일 파행적으로 취소되면서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하는 지금의 구조는 반복되는 파행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나 계산법도 없어 매년 정치적 논리, 정권 성향, 여론에 좌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갈등을 줄이면서 더 객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만드는 방향으로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 근거 약한 계산식에 정치까지 영향… 노사 반발
들쑥날쑥한 최저임금 인상률에 비판이 쏟아지자 2022년도 최저임금 심의 때부터 공익위원들은 임시로 경제지표를 반영한 계산식을 쓰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를 빼는 방식이다. 2023년도 최저임금 심의 때도 같은 방식을 썼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근거 없는 산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36번 심의 중 합의는 7번뿐… 악순환 반복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도 노사가 합의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노사 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인 이들 국가와 노사 갈등이 극심한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또 표결권을 가진 참여자가 10명 안팎으로 적은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총 27명이 참여하고, 객관적 기준 없이 노사가 원하는 인상률을 마음대로 제시할 수 있어 합의가 더 어렵다.
● “객관성-안정성 갖춘 인상률 결정체계 필요”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자 정부도 2019년 2월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노사정이 추천한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상하 구간을 정하면, 그 범위 내에서 지금처럼 합의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입법이 지연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꾸는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호한 결정 기준을 경제지표 등으로 명확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지금처럼 노사 힘의 관계나 정치적 개입이 이뤄지지 않도록 전문가 중심으로 경제성장률, 물가 등의 지표를 근거로 경제와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지표나 산식을 결정 기준으로 삼으면 지금처럼 노사 합의제를 유지해도 양측이 더 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