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김동환 ‘봄의 오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이원수 ‘고향의 봄’),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김소월 ‘진달래꽃’).
진달래는 우리나라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수많은 시와 동요, 가곡에서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박힌 꽃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는 이른 봄에 피지만,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는 지금이 제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참꽃 축제’가 열린 대구 비슬산에 다녀왔다.
대구 달성군 비슬산 정상은 국내 최대 참꽃(진달래) 군락지이다. 대견사에서 대견봉(해발 1035m)에 이르는 99만여 ㎡(약 30만 평)의 고원에 진홍색 주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군데군데 푸른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온통 진달래 꽃대궐이다.
●참꽃을 먹고 즐기는 화전놀이
대구·경북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먹을 수 있는 진짜 꽃’이란 의미다. 철쭉을 ‘개꽃’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철쭉은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봄이 오면 음력 삼월 삼짇날에 경치 좋은 곳에서 진달래꽃을 찹쌀가루에 반죽해서 부쳐 먹는 ‘화전(花煎)놀이’를 즐겼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비슬산은 99만여 ㎡(약 30만 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참꽃 군락지다. 비슬산은 해발 1000m 고지대여서 진달래가 늦게 핀다. 산 아래쪽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에는 벌써 철쭉이 피어나고 있지만, 산 정상 부근에는 진달래꽃이 주단을 펼쳐 놓은 듯 장엄하게 피었다. 14, 15일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참꽃문화제가 열렸다.
그러나 참꽃 군락지에 가까이 가서 보니 군데군데 꽃이 시들어 말라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올해 꽃이 만개하기 직전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일부 진달래가 꽃봉오리째 얼어버리는 동해(凍害)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견사에서 대견봉에 이르는 능선 전체를 뒤덮은 꽃대궐 속에서 사진을 찍는 상춘객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비슬산은 ‘비파 비(琵)’에 ‘큰 거문고 슬(瑟)’자를 써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불린다.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 산 정상의 바위 모양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비슬산 정상 부근에 대견사(大見寺)가 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의 사찰 이름이다.
대견사 주변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비슬산 암괴류’가 여러 갈래 물결처럼 흘러내린다. 부처 모양의 바위와 3층 석탑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끝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온 우주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비슬산 절벽 끝의 바위를 기단 삼아 서 있는 대견사 3층 석탑.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대견보궁 왼쪽에는 산신각과 암굴이 있는데, 암굴에 새겨진 작은 마애불의 미소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암굴 옆에 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대견사 뒷마당에 본격적인 꽃대궐이 펼쳐진다.
비슬산을 오르려면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주차장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휴일에는 1시간 이상 탑승을 기다려야 한다. 등산이나 트레킹을 원한다면 유가사 쪽에서 대견사로 향하는 길을 추천한다.
●삼국유사의 땅
비슬산은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서기 810년) 때 보당암(寶幢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 일연은 22세 때 승과에 합격한 뒤 22년 동안 보당암(대견사), 묘문암, 무주암 그리고 인흥사와 용천사를 거쳤는데 이 모두가 비슬산에 있다. 비슬산은 일연의 득도처이자, 삼국유사가 구상되고 집필된 곳이다.
일연은 중국과 국내의 고전 역사서, 비문(碑文)과 옛 문서까지 총망라하고 전국의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이야기를 채집해서 삼국유사를 썼다.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의 저자인 한양대 고운기 교수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연대별 사건 서술에 주력한 반면, 일연은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며 삼국유사를 ‘길 위의 책’이라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는 지배층의 정치사뿐 아니라 당시 고려 백성의 염원과 신화, 전설을 폭넓게 담아 한민족의 정서와 세계관을 집대성한 역사서”라며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연극과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라고 설명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흥사’는 현재 3층 석탑이 있는 절터로만 남아 있다. 인흥사지는 고려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던 문익점(1329~1398)의 18대손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남평 문씨 세거지가 되었다. 인흥마을에 주차하면 가장 먼저 문익점 동상이 눈에 들어오고, 뒤편에는 목화밭이 조성돼 있다. 지난가을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눈처럼 하얀 목화솜이 가득한 밭이 인상적이다.
인흥마을의 첫머리에 있는 수백당(守白堂)은 봄이면 매화와 산수유, 여름에는 능소화가 멋들어지게 피어나는 집이다. 요즘 마당의 담장 밑에는 모란꽃이 활짝 폈다.
김영랑이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오월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노래했는데, 사월에 이미 활짝 폈다. 수백당 오른쪽의 협문을 통과하면 약 2만 권의 서책과 책판이 보관돼 있는 ‘인수문고(仁壽文庫)’가 있다.
수백당 담장을 끼고 오른쪽에 있는 광거당(廣居堂) 안에도 1만 권의 책을 비치한 ‘만권당’이 설치돼 전국의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토론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광거당 누마루에는 추사가 적은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연못이 메워지고 없지만, 광거당 앞에 분홍빛 꽃을 피운 모과나무가 드리우는 그늘만으로도 운치가 넘친다.
올해 9월 대구시에 편입될 예정인 경북 군위군은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불린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삶을 마무리한 인각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각사 주변 해발 800m 정상에 자리 잡은 화산마을의 행정구역 이름도 군위군 ‘삼국유사면’이다.
군위군 삼국유사면 해발 800m 정상에서 군위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화산마을의 빨간 지붕 풍차.
마을에는 1709년 조선 숙종 때 병마절도사 윤숙이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고자 쌓기 시작한 화산산성 일부가 남아 있다. 고랭지 채소 재배로 살아가는 이 농촌 마을은 요즘 군위댐과 풍력발전소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동화 속 풍경처럼 빨간색 지붕의 풍차가 세워져 있는가 하면, 캠핑장에는 일출과 일몰, 운무와 새벽하늘 별빛이 이루는 장관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군위 한밤마을은 돌담이 쌓인 골목길 산책을 하기에 좋다. 제주가 현무암 돌담이라면, 한밤마을의 돌담은 화강암에 낀 이끼가 고색창연한 빛을 발한다.
고즈넉한 돌담길이 있는 경북 군위 대율리 한밤마을.
부림 홍씨(缶林洪氏)의 집성촌인 한밤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은 남천고택(南川古宅)이다.
군위 한밤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인 ‘남천고택’.
고택 옆에 있는 정면 5칸, 옆면 2칸짜리 ‘대율리 대청’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다.
●맛집=대구는 ‘교촌치킨’ ‘멕시칸치킨’ ‘페리카나치킨’ ‘처갓집 양념통닭’ 등이 탄생한 치킨 프랜차이즈의 메카이다. 또한 막창, 납작만두도 요즘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막창 가게는 대구 남구 대명동 ‘안지랑 곱창거리’에 몰려 있다. 앞산의 수려한 경치를 함께하고 있는 대구의 대표 곱창거리다. 치즈곱창, 매운불곱창, 막창, 염통, 볼살 등 다양하게 개발된 메뉴를 가게마다 차별화된 비법 소스에 찍어 먹는다. ‘막창에 소주’는 옛말이다. 이 거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한 맛의 수제맥주 ‘안지랑이’는 화끈한 불곱창 맛과 잘 어울린다.
대구 대명동 안지랑 곱창거리에 있는 ‘곱창돈박사막창’.
요즘 MZ세대들이 열광하는 대구의 또 다른 명물은 ‘납작만두’다. 분식으로 유명한 대구에서는 서문시장 칼국수와 떡볶이가 인기였다. 대구가 다음으로 찾아낸 메뉴는 대구 사람들이 ‘납딱만두’라고 부르는 음식. 밀가루만 얇게 부치거나, 당면과 부추를 최소한으로 넣어 얇게 부친 만두다. ‘대구판 또띠야(토르티야)’ ‘대구판 월남쌈’처럼 만두피처럼 얇은 만두에 떡볶이를 싸 먹거나, 빨갛게 양념을 한 회무침, 오징어무침을 싸 먹기도 한다.
대구 서구 달구벌대로 푸른회식당의 납작만두와 회무침.
대구, 군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