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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그를 평생 덕질하는’ 친구가 둘 있다[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입력 | 2023-04-22 09:00:00

[3] 운명의 수레바퀴를 함께 탄 깐부 셋 …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소설가 신중선-뮤지컬 연출가 유희성




깐부. 국어사전에는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보충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 하버드 의대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부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 따뜻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평생 우정 삼총사가 2일 서울 청담동 이상봉 디자이너 전시장 타워에서 뭉쳤다. 왼쪽부터 유희성 전 서울예술단 이사장, 이상봉 디자이너, 소설가 신중선 작가.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전화를 했는데 없는 번호라는 거야. 친구 딸한테 전화를 하니 ‘엄마 핸드폰 번호 안 바뀌었다’더라고. 알고 보니 급한 마음에 옛날 번호를 누른 거야. 하하.”

‘국민 패션 리더’로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는 이상봉 디자이너(68 ּּ 홍익대 패션대학원 초빙교수)에게는 특별한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이 있다. 사람 사귀고 관리하는데 프로인 이 디자이너로 하여금 옛 번호를 누르는 실수를 하게 만든 깐부는 소설가 신중선 작가다.

이 디자이너와 동갑인 그는 월간지 기자를 하다 1987년 부장 데스크의 권유 한 마디에 소설가로 등단했다.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하루’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하드록카페’, ‘돈워리 마미’, ‘환영 혹은 몬스터’ 등이 대표작. 2006년에는 ‘비밀의 화원’으로 한국문인협회 제정 대한민국 소설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조명한 ‘강철왕 박태준(2013)’도 화제가 됐다.

신 작가는 좋고 싫은 게 확실한 사람이다. 소설가인데 문단 활동도 거의 안 한다. ‘독고다이’다. 자기 작품도 설명이나 홍보를 안 한다. 독자들이 각자의 몫을 읽고 묘미를 알면 그만이다. 누가 봐도 쿨한, 이런 신 작가가 평생 ‘덕질(어떤 분야나 인물에 심취해 파고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디자이너다.

오죽했으면 신 작가는 자신만이 아는 이 디자이너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문학으로 덕질하다(2020년 발간)’ 소설에 담았다. 이병헌(배우), 박진영(가수), 샤를 보들레르(프랑스 시인) 등도 ‘덕질’을 한다며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긴 했는데 내용의 깊이는 이 디자이너가 으뜸이다. 최근 서울 청담동 이상봉 디자이너 전시장 타워를 찾은 신 작가는 “요즘 글도 잘 안 써지고 정치 혐오증도 생기고, 늙은 내 얼굴이 보이고…. 여러모로 침체돼 있는데 또 밝은 세상으로 저를 꺼내려 불러주시려나”하고 깐부의 부름을 반겼다.

신 작가 옆에는 이 디자이너의 또 다른 깐부가 와 있었다. 유희성 전 서울예술단 이사장(64)이다. 유 전 이사장은 뮤지컬계에서는 드물게 배우와 연출가, 국가 예술단체장으로 커리어를 넓힌 인물이다. 국내 창작 뮤지컬 1호인 ‘명성황후’에서 고종 역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연출가로도 ‘피맛골 연가’, ‘투란도트’, ‘소나기’, ‘모차르트’ 등 굵직한 작품을 다뤘다. 여수 엑스포 등 여러 국제 이벤트에도 연출, 예술 감독 등으로 참여했다. 2018년부터 3년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해 복귀작으로 트로트 창작뮤지컬 ‘고향역’을 연출했다. 가수 나훈아의 명곡을 모티브 삼아 만든 ‘고향역’은 트로트 붐이 일기 전에 기획했던 작품이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늦게 선을 보였다.

신 작가가 톡톡 튄다면 유 전 이사장은 잔잔한 파도 같다. 이 디자이너의 말을 빌리면 유 전 이사장은 자신의 든든한 뒷배다. 34년 전 서울 명동 퍼시픽호텔 부근에서 디자이너와 배우로 처음 만났다. 그 인연으로 이 디자이너의 첫 번째 파격적인 패션쇼를 도왔고, 지금까지 곁을 지키고 있다.




●앙드레 김 만나려다 이상봉과 친구 되다
“여기 올 때 계산했어요 . 2023년-1997년=26년.”

신 작가는 1997년 소설을 쓰던 중에 한 문학잡지 프리랜서로 이 디자이너를 인터뷰하다가 그날로 평생 만나는 사이가 됐다.

“선생님이 뭄에 붙는 가죽 스키니 바지를 입고 나왔다”는 신 작가가 기억하는 첫 만남 스토리 자체가 드라마다. 오전 9시에 인터뷰를 하고 헤어진 뒤 다시 밤 9시에 만나 새벽까지 같이 홍대 인근을 누볐다는데….

-1일 2만남이었네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런던 쇼를 포기하면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가서 옷을 팔겠다고 준비하던 직전이었어요. 처음으로 일이 꼬였지만 아직 패션쇼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죽을 때까지 사랑을 해 보겠다’는 순수함과 패기도 있었어요. 그 무렵에 신 작가하고 인터뷰를 하겠다고 만났죠. 정말 사랑 얘기만 두 시간을 한 거야. 재밌어서 꽂힌 거죠. 그러다 신 작가가 클럽도 안 가보고 클럽 소설을 썼다는 얘기를 하는거야. 2차로 또 꽂혔어요. 내가 대놓고 ‘글은 가짜’라고 했죠. 그러면서 홍대 클럽들을 경험해보라고 데려간 거예요. 하하.”(이상봉)

-상상이 안 되는데요.
“가보지도 않은 클럽을 상상해서 소설을 썼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웃겼겠어요. 밤에 홍대 ‘발전소’부터 ‘명월관’ 클럽까지 싹 데리고 다니더라고요. 나중에 또 벤치에 앉아서 사랑 얘기를 하고, 아무튼 희한한 경험이었죠.”(신중선)

이 디자이너는 고단한 작업과 일상에 지칠 때마다 신 작가와 자주 다니는 서울 구기동 단골식당을 찾는다. 구기동 주민인 배우 유해진 씨(가운데)와 만난 이 디자이너와 신 작가. 이상봉 씨 제공

신 작가가 26년 전 그날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있다. 하마터면 ‘이상봉’을 못 만날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유 전 이사장도 연결이 안 됐다.

“원래 고 앙드레김 선생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그런데 거절을 해서 못 만났거든요. ‘누구를 할까’ 찾아보다 패션 전공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이상봉’을 꼽은 걸 봤어요. 그래서 섭외를 했죠. 만약 앙드레김 선생님을 인터뷰했다면 ‘이상봉’은 제 인생에서 절대 존재하지 않았겠죠(웃음).”




●  ‘덕질’로 ‘이상봉 자아’ 찾아준 친구들
이 디자이너의 소개로 신 작가와 유 전 이사장이 만나게 되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셋은 서로의 버팀목이 됐다. 신 작가나 이 디자이너를 ‘덕질’ 하다가 자신의 딸과 이 디자이너의 아들(이청청)을 결혼으로 맺어볼까 생각도 했다. 이 디자이너 역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두 자녀 모두 유학 중이라 ‘연결’되지는 않았다.

셋은 만남 초창기 홍대 부근에서 주로 만났다. 나중에는 신 작가의 집이 있던 평창동, 구기동에서 자주 뭉쳤다. 신 작가는 동네 단골 술집을 뚫었다. 그곳은 화려한 패션 무대에서 막 내려온 이 디자이너가 외롭고 지친 ‘이상봉’을 온전히 내려놓는 공간이었다.

“1년 중 3분의 1은 해외에 나가 있고, 3분의 1은 패션쇼 때문에 시간이 안나요. 그러니 정작 내가 시간이 나면 주변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연락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때 외로움을 느꼈죠. 그런데 둘은 새벽에라도 내가 힘들어서 연락을 하면 다 받아줬어요.”

친구들 덕에 이 디자이너는 주변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보는 여유를 얻었다고 했다. 과거에는 화려한 패션 무대와 정반대의 현실을 마주할 때 충격이 컸고 모두 속으로 삭였다. 이들을 알고부터 자신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기게 됐다.

- 큰 변화였네요.
“정말 긍정적으로 변했죠. 코로나19때 매장을 미국에서 철수하고 수출도 못 했는데 정작 ‘국내에서 사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내 자아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쇼를 할 때도 ‘나는 이상봉이다’를 과감하게 외쳤죠. 3월 쇼(2023 F/W 서울패션위크 이상봉 컬렉션)에선 제 이름 ‘상봉’을 옷 패턴에 넣었는데 이것도 나를 찾는 작업이었어요. 코로나19가 되레 고마웠죠. 친구들이 계속 옆에 있어 준 덕에 자아를 잃고 정신없이 살아온 저를 되돌아볼 수 있었죠.”(이상봉)

신 작가, 유 전 이사장은 이 디자이너의 특별한 존재감을 찾으려고 다양하게 노력을 했다. 신 작가는 ‘문학으로 덕질하다’에서 이 디자이너의 매력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입체적으로 그려 썼다. 신 작가는 평소 가족을 ‘세상이 버린다 해도 끝까지 나를 지켜줄 보루’라고 본다. 이 디자이너가 나를 지켜주는 가족이라는 심정으로 그의 존재감을 찾았다고 했다.

신 작가의 깨알 같은 파고듦에 이 디자이너는 “신 작가가 보이지 않는 나를 찾아주려 한 것에 감사한다.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의 아름다운 동행을 기대해 본다”는 추천사를 적으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신 작가는 ‘이상봉 덕질’을 하다 그림까지 그리게 됐다. 신 작가는 ‘문학으로 덕질하다’를 출간하면서 책 속 11번째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 디자이너의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 넣었다. 신중선 씨 제공   

유 전 이사장도 다양한 뮤지컬 실험으로 자신에게 정답 없는 예술의 확장성을 알려준 이 디자이너의 가치를 조명했다.

“원래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셨던 선생님은 패션쇼에 기본적으로 퍼포먼스를 다양하게 접목하세요. 옆에서 보면서 뮤지컬도 ‘파고들면 새로운 게 보인다. 무한대의 영역’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게다가 가장 한국적인 것, 한글의 아름다움과 기능적인 면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시잖아요. 세부 퍼포먼스에도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차별화하려는 집요함이 숨어 있어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루트로 소통하려는 예술가의 진지한 감성을 배웠습니다.”

유 전 이사장은 이 디자이너의 든든한 뒷배다. 이 디자이너가 각계의 다양한 아티스트를 만나면서 ‘이상봉 패션쇼’만의 예술성을 확장할 때 유 전 이사장은 그의 의지에 열정과 아이디어를 더했다. 뮤지컬 나폴레옹 공연을 찾았다가 개그맨 홍록기(오른쪽)를 만난 이 디자이너와 유 전 이사장. 이상봉 씨 제공

이 디자이너와의 ‘화학적 모방’을 밑천삼아 유 전 이사장은 국내 최초 대학 뮤지컬학과(백제예술대) 설립 주도, 국공립단체 뮤지컬 공연 영상화, 숏폼 웹 뮤지컬 사업 등 이전 업계에서 전무했던 일들을 거침없이 진행해왔다.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에도 서울예술단을 이끌며 다양한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 문제를 다룬 ‘나빌레라’, ‘윤동주 달을 쏘다’, ‘이른 봄 늦은 겨울’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뮤지컬학과를 만든 건 배우가 한글 기능을 알고 명확하게 구사하면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 디자이너의 한글 사랑에 동화되면서 나온 아이디어다.

한글은 ‘디자이너 이상봉’을 패션계에서 파란의 거장으로 만든 은인과도 같다. 이상봉 씨 제공


-유 전 이사장께서 ‘이상봉 예술’의 맥을 제대로 짚고 있네요.

“옷이라는 게 나만의 테마가 있다고 해서 보는 사람에게 완벽하게 전달이 되진 않죠. 음악이든, 연극이든 퍼포먼스를 붙여 옷에 대한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하죠. 내가 다양한 아티스트와 교분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인데 그 물꼬를 트고 중간 고리 역할을 해준 게 희성 씨에요. 배우에서 연출가로, 또 이사장으로…. 이렇게 단계적 경험을 한 분은 뮤지컬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요. 성실하죠. 나에게도 인생의 교과서적인 바탕입니다. 이상봉의 패션 그림을 완성해준 붓 같은 친구죠.”(이상봉)





● “서로의 정신과 의사가 돼주자. 그리고 비우고 새 것을 채우자”

앞으로 더 의지하고 기대자는 의미로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감싸 안은 깐부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얘기를 나누니 의지할 일이 많다. 근래에 각자 힘든 일들이 있었다.

이 디자이너는 최근 친동생 가족 중 유일하게 남은 핏줄인 조카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3월 쇼 개막 바로 몇 주 전의 일이었다. 충격이 커서 쇼를 취소할까도 했다.

“먼저 떠난 동생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조카에 대한 미안함에 힘들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되는지 계속 걱정이 되더라고요.”

신 작가도 세월의 빠른 흐름에 보통 사람들이 겪는 맘고생을 하고 있다.

“인간 관계도 끊어지고 기억력도 흐려지고…. 젊었을 때 자주 입은 청바지가 안 어울릴 것 같고…. 우울증 같은 게 오더라고요.”

유 전 이사장 역시 2021년 서울예술단 이사장 임기가 끝나 야인이 된 상황에서 뮤지컬 열정을 재차 살릴 동기 부여가 절실하다.

“서로 힘든 게 있으면 같이 울어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자. 응원하고 서로가 정신과 의사가 되어주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것들을 채우려면 비워야 해. 비웁시다.”

이 디자이너가 셋의 앞날 목표를 얘기한다.

신 작가는 “내가 우울증에 걸린 줄 알았는데 노인 심리 상담 공부를 해보니 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상’이라고 나에게 요즘 말해준다. 그러니 위안이 되더라”며 스스로에게 정신과 의사가 됐다고 선수를 친다. 그는 노인의 심리 공부를 하면서 타로까지 배웠다.

“오늘 만나기 전에 셋의 타로 점을 봤는데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왔어요. 우리 전생에 인연이었답니다.”

듣던 유 전 이사장이 “축복의 타로”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신 작가님이 쓰신 ‘비밀의 화원’을 예전에 뮤지컬로 만들까 했다. 다시 추진”이라고 분위기를 돋운다. ‘비밀의 화원’은 비밀을 감추고 살아가는 4명의 젊은이들의 심리를 다룬 소설. 작품에서 다양한 음악, 호러 영화 등이 등장해 뮤지컬 각색으로도 딱이다.


앞으로 힘들 때는 같이 더 울어주고,  각자 마음의 욕심을 비우면서 새로운 일로 인생을 가득 채우자는 다짐을 하는 세 깐부의 건배 결의.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어 신 작가가 승부욕을 발동시킨다.

“‘문학은 덕질이다’ 속편을 내볼까 하는데…. 희성 씨도 넣고, 오늘 취재기자님도 넣고.”

잠시의 침묵을 참지 못한 이 디자이너도 작은 희망을 얘기한다. 3월 쇼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을 접목했던 그는 한·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을 맞아 9월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쇼를 재차 하기로 했는데 이보다 더 챙기고 싶은 일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우리 문화를 알리는 패션 디자이너와 교육자로 살았어요. 마지막 삶은 2016년부터 해온 고교 패션 콘테스트에 맞춰 있어요. 미래 패션 영재들의 꿈을 계속 키워줄 겁니다. 신 작가의 속편 책에서 이 내용하고, 과거 배우와 작가를 꿈꿨으나 포기했던 내 자신에 대한 미안함을 전편 내용에 이어 붙여줬으면 좋겠어요.”

이 디자이너의 혼이 담긴 주문에 두 사람이 다시 ‘덕질’을 시작하며 술잔을 든다.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셔요.”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