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41화입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2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 관련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증인 진술 앞뒤가 너무 안 맞아요. 본인도 느끼고 계시죠? 어느 정도 배경 사실에 관한 거라 진술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사실을 인정하려고 했는데 모순이 너무 많아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11호 형사중법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9차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 이 같이 말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 사건과 관련해 김 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초록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증언을 이어가던 김 씨의 말을 ‘잠시만요’로 멈춘 조 부장판사의 ‘경고’가 등장한 사정은 이렇습니다.
● “너 이거 걸리면 네 명 다 죽어”라며 건넨 5억 원?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가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뇌물 등 혐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당시 남 변호사와 김 씨는 사업 과정에서 갈등을 겪어 서로를 차단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돈도 갚고 화해까지 하기 위해 유 전 직무대리를 통해 남 변호사에게 4억 원을 건넸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인 겁니다.
하지만 김 씨 증언과 다르게 정영학 회계사는 13일 법정에 출석해 ‘2021년 2월 1일 김 씨가 전날 유 전 직무대리에게 5억 원을 줬다고 했다’는 취지로 증언합니다. 남 변호사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음파일에는 김 씨가 유 전 직무대리에게 “가져가는데 걸리지 않게 가져가야지(라고 했다)”라며 “너 이거 걸리면 네 명(김 씨 증언에 따르면 유동규 정영학 남욱 김만배) 다 죽어(라고 말했다)”고 알려주는 대목도 포함돼 있습니다.
증인에 따라 5억 원의 의미가 이토록 달라진 것입니다. 조 부장판사는 “(돈의 성격이) 화해의 제스처인데 남 변호사가 죽는다는 게…. (증언을) 만들어내지 마시고 본인 혐의와 관련된 부분이 상당해 진술이 어려우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고 점잖게 꾸짖었습니다.
● 이재명 경선자금 명목 20억 원 요구 놓고 엇갈린 증언
얼마 지나지 않아 조 부장판사의 두 번째 ‘경고’가 다시 김 씨를 향합니다. 이번에는 김 씨가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20억 요구’에 대한 진술을 이어가던 때였습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선자금 성격으로 김 씨가 20억 원을 요구받았다는 증언은 지난 달부터 세 차례에 걸쳐 대장동 관련 재판에 등장했습니다. 지난달 28일에는 김 전 부원장 재판에서 남 변호사는 “유 전 직무대리가 3월 경에 경선을 하는데 20억 원을 구해줄 수 있는지 (증인에게) 물어봤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8일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뇌물’ 혐의 관련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정 회계사도 13일 진행된 김 전 부원장 공판에서 “증인은 김 씨가 시장실이라고 불리는 경기도청에 가서 정 전 실장으로부터 현금 20억 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고 ‘욕 나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고 진술한 적 있냐”는 검찰 물음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이 같은 ‘20억 요구’를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정 전 실장에게는 20억 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은 사실이 없고, 유 전 직무대리가 2020년 5~6월경 이 대표의 대선 경선자금으로 20억 원을 요구하자 “‘나 거기다(정치판) 끌어들이지 마라. 니네 대장(이 대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무슨 대선 준비냐’고 답했다”고 했을 뿐입니다.
검찰이 정 회계사의 진술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정 전 실장의 20억 요구 사실을 기억하냐고 묻자 김 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증인이 20억을 요구받았다고 한 것 같다”고 또 한 번 묻자 김 씨는 “제가 하도 거짓말을 많이 해서”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자 조 부장판사는 다시 한 번 김 씨의 말을 자르고 검찰 측에 “법정에서 수사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증거들이 증인의 증언과 사뭇 다른 것이 많다. 증인이 그 부분을 디펜스(방어)하는 게 ‘그건 허언이었다’인데 합리성 있게 답하면 좋겠다”고 지적했습니다.
● 김만배 증언에 ‘송곳 검증’ 나선 재판부
권순일 전 대법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진행 당시 권순일 전 대법관의 방에 수 차례 드나든 경위에 대한 재판부의 ‘송곳 질문’ 공세도 이어졌습니다.
김 씨는 당시 권 전 대법관을 찾아간 이유에 대해 당시 법률신문 인수와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회장 소개를 부탁하고, 권 전 대법관이 쓰고 있던 책과 관련해 기획과 제목, 순서 등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는데요.
“(방문 당시) 이 대표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인가”라는 검찰의 질문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법조 기자를 20년 해서 대법원 특성을 잘 아는데 대법원 출입 기자가 대법원에 근무하는 고위 법관에게 그런 말씀을 드리는 자체가 부적절해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김 씨가 법률신문 사장과 회장을 소개 받은 시점이 언제였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김 씨가 2021년에 대한변협 회장에게 법률신문 사장과 회장 소개를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하자 재판부는 “2021년에 매각 의사 확인을, 그것도 사장을 만나 거절당했는데 2020년에 권 전 대법관을 찾아 인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김 씨는 “그 전부터 법률신문이 시장에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재판부는 권 전 대법관이 발간했다는 책(‘공화국과 법치주의’)은 대법관 퇴임 때 판례를 모아 발표한 책인데 김 씨가 어떤 도움을 줬다는 것인지도 물었습니다. 김 씨는 “그분이 이야기 하면 저는 이런 방식으로 가는 게 좋겠다, 순서는 이렇게 가는 게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김만배 “나이 50가까이 돼서 의형제?”
김 씨는 이날 법정에 출석해 지금까지 자신과 관련돼 쏟아져나온 증언의 상당 부분을 부인했습니다. 남 변호사가 김 전 부원장, 정 전 실장, 유 전 직무대리와 김 씨가 4명이서 식사하며 의형제를 맺었다는 말을 김 씨로부터 들었다고 한 증언에 대해서도 “그건 남 변호사의 생각”이라며 “나이 50 가까이 돼서 의형제 맺는 게 쉽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유 전 직무대리와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등 3명과 다른 태도를 취하며 혐의를 부인하다보니 진술이 꼬이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장동 본류 재판의 시계가 재판부 교체에 따른 ‘공판갱신절차’로 두 달 가까이 멈춰 있는 동안 대장동 사업 관계자들을 둘러싼 재판은 이처럼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17일 마지막 공판갱신절차를 끝낸 대장동 재판은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됩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