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도쿄 근처 전통가옥을 3천만 원에 샀어요”… 빈집 느는 日[횡설수설/박중현]

입력 | 2023-04-21 21:30:00


“도쿄 주변 삼나무 전통가옥을 2만3000달러에 사서 살고 있는데 만족스럽다.” 일본인 부인과 몇 년 전 도쿄 북동쪽 이바라키현의 단독주택으로 이주한 호주 출신 40대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사연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소개됐다. 집주인 사망 후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하던 ‘아키야(空き家)’를 경매에서 낙찰받았다고 한다. 열차로 도쿄까지 45분 거리에 건평 250㎡, 대지 330㎡짜리 집을 불과 3000만 원에 샀다니 한국인들에게도 솔깃할 일이다.

▷버블경제의 거품이 걷히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버려진 빈집이 아키야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2018년 850만 채였던 아키야는 2033년에는 2000만 채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집값이 싸다 보니 일본 이주를 원하는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다. 최근에는 이들을 상대로 빈집을 수리해 판매하는 업체도 여럿 생겼다. 부동산 세수가 줄어 고민하는 일본의 지자체들로서도 반길 만한 일이다.

▷고령자 비율이 높은 지역에 더 많지만 수도인 도쿄에서도 주택의 10% 정도가 빈집으로 방치돼 있다. 낡은 집을 수리하는 데 큰돈이 들고, 상속세율까지 높아 고령 거주자 사망 후 물려받으려는 자손이 많지 않다. 빈집이 늘면 도시가 슬럼화하고, 범죄 위험도 커진다. 일본의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교토가 2026년부터 빈집, 사용하지 않는 별장 등 1만5000여 채 소유주에게 ‘빈집세(稅)’를 물리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도 ‘빈집 위험국’이다. 지방 도시에서 황폐화한 폐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집계 방식마저 통일이 안 돼 있다는 점이다. 5년마다 방문조사 때 당일 비어 있는 집을 집계한 통계청 조사에서 재작년 전국의 빈집은 139만 채로 전체 주택의 7.4%였다. 전기·상수도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국토교통부의 작년 통계는 10만8000채로 이보다 훨씬 적다. 정부는 지난해에야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빈집 관리 업무를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빈집과 달리 도쿄, 교토 도심의 새집 값은 급등세다. 버블 붕괴 후 집을 사려는 이가 줄자 새 주택을 많이 짓지 않아서다. 달러화에 비해 엔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진 ‘킹 달러’ 현상 때문에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한 맨션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늘어난 영향도 크다고 한다. 작년 일본 수도권에서 팔린 신축 맨션 중 8.4%는 가격이 1억 엔(약 9억8500만 원)을 넘어서 1980년대 중후반 버블 시기의 집값을 되찾았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에겐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아파트 중간가격은 올해 2월에야 겨우 10억 원 밑으로 떨어졌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