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사회성 극도로 발달된 행태… 개미-벌 등에게서 흔히 발견 사회 존속 위해 타인의 출산 도운 초창기 인류 ‘할머니 도우미’ 존재 “인류를 우세종 만든 것은 이타심” ◇새로운 창세기/에드워드 윌슨 지음·김성한 옮김/168쪽·1만8500원·사이언스북스
벌의 사회성 진화를 설명하는 그림. 사회성이 낮은 벌은 먹이를 기절시켜 알을 낳지만 사회성이 높아지면 침을 쏘아 보금자리로 옮기고, 결국 어미와 딸이 군락을 이루며 분업하는 진사회성 집단이 된다(왼쪽 사진). 사회성이 높은 잎무늬꼬마거미들이 큰 딱정벌레를 잡은 모습. 아래쪽 ‘유모’ 거미들은 알을 보호하고, 위쪽 ‘사냥꾼’ 거미들은 사냥에 나서는 분업을 한다. ⓒDebby Cotter Kaspari 2019 사이언스북스 제공
불개미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위해 살아간다. 일개미들은 평소엔 번식에 특화된 여왕개미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일개미는 여왕개미를 극소수만 남기고 하나씩 제거한다. 일개미는 여왕개미의 다리를 활짝 펴게 해놓고 찔러 죽인다. 제거되는 여왕개미 중엔 일개미의 어미도 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눈물을 머금고(?) 집단을 위해 잔혹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이후 살아남은 여왕개미가 알을 낳으면 일개미는 다시 새끼를 부양하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다윈의 가장 위대한 20세기 후계자’로 불리는 미국 사회생물학자인 저자(1929∼2021)는 불개미의 이런 행태를 ‘진사회성(眞社會性)’이란 개념으로 해석한다. 진사회성은 사회성이 극도에 달해 높은 수준의 협력과 분업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개체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성이 극단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개미는 부양에, 여왕개미는 번식에 집중하면서 사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저자가 진사회성에 주목하게 된 건 인류 때문이다. 초창기 인류가 처음 지구에 등장했을 때 인류의 생물량은 전체 동물 중 10%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인류와 인류가 길들인 가축의 생물량을 모두 합하면 전체의 99%에 이른다. 다른 어떤 동물도 아닌 인류가 지구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 건 사회성이 극도에 달한 ‘진사회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동물의 사회성은 여러 단계에 걸쳐 진사회성으로 나아간다. 사회성이 낮은 벌은 침을 쏘아 먹이를 잡은 뒤 먹이에 알을 낳는다. 이어 새끼가 태어나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그대로 놔둔다. 사회성이 발달하면 벌은 침을 쏘아 먹이를 잡은 뒤 이를 보금자리로 옮긴다. 이어 보금자리로 계속 기절한 먹이를 배달한다. 사회성이 극도에 달하면 벌은 어미와 딸이 군락을 이루며 산다. 딸들은 먹이를 잡아서 어미에게 배달한다. 딸이 일꾼, 어미는 여왕으로 역할을 나눌 정도가 되면 진사회성 집단이라고 부른다.
미국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생전 모습. ⓒ박기호 사이언스북스 제공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