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개의도 못 하고 멈춰 서면서 어느 해보다 험난한 협상이 예고되고 있다. 18일 예정이던 첫 회의가 노동계와 공익위원 간 갈등으로 파행 끝에 취소되더니 재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산출 기준 없이 노동계와 경영계의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구조 자체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임위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노사가 각자 원하는 인상률을 일단 제시하고, 노사가 대립하면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돼 왔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도 노동계는 24.7%,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해 간극이 상당하다.
이러다 보니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노사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한 사례는 7차례에 그친다. 2010년 이후론 단 한 번도 없다. 사회적 대화 기구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무엇보다 캐스팅보터인 공익위원들이 정부 정책이나 기조에 따라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식이어서 인상률이 대중없이 요동쳤다.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두 자릿수로 뛰었다가 과속 인상 부작용에 코로나19가 겹치자 2021년 1.5%까지 떨어졌다.
이와 달리 노사관계 선진국들은 경제 전반에 대한 다양하고 정확한 통계와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기반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독립된 전문가그룹이 인상률을 제시한다. 우리도 소모적인 갈등을 줄이면서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최저임금이 정해지도록 임금 결정 체계를 이참에 바꿔야 한다. 특히 정치 편향을 불식할 수 있도록 공정하면서도 전문적인 임금 인상 공식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