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인천지방법원에 경매매각기일 직권 변경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소중한 목숨을 셋이나 희생시킨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 각지에서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 경기 화성시 동탄을 비롯해 경기 구리시, 부산 사상구·동구·부산진구 등 빌라·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피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이 일당 20여 명을 붙잡아 수사 중인 구리시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 세입자는 최소 500명, 피해액은 수백억 원대로 추정된다. 작년 10월 터진 경기 안산시 빌라사기 피해 규모는 300여 명, 600억 원으로 당초보다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전세 만기가 되지 않아 사기당한 사실조차 모르는 세입자도 적지 않다. 경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피해자 1700여 명, 피해액 3100억 원보다 전체 피해 규모는 훨씬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청년 3명의 죽음이 이어진 미추홀구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여기도 재난 현장”이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는 현실은 전세사기가 특정 지역 문제가 아닌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정부가 6개월 경매유예 조치 등 대책을 서둘러 내놨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허점이 많아 세입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정부 요청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에서 대부·추심업체, 개인으로 채권이 넘어간 주택의 경매는 예정대로 진행된 것이다. ‘인천 건축왕’ 사건 피해 주택만 해도 1787채 중 31%의 채권자가 대부·추심업체와 개인이다.
전세사기는 이미 ‘땜질 처방’이나 미봉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대형 사회적 재난이 됐다. 우선 전세사기가 전국적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실태 파악부터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여야는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전세사기 해법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당장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근본적 보상책은 무엇인지, 재발 방지를 위한 구조적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속히 내놔야 한다. 현 법제도 안의 대책만으로 한계가 있다면 특별법 제정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