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절벽 이어 유리벽 실증 여성 자기주도적 커리어 방해해 기업 내 여성 편견 점검해야
산업 발전과 교육 기회 증대로 자기 주도적인 커리어 설계 기회가 늘면서 여성이 유리천장이나 경력 단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주도적 커리어를 밟는 여성들이 ‘유리벽’이라는 또 다른 장애물에 부딪혀 영역 확장에 한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능력을 키우려면 일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일할 기회는 능력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기존 연구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능력과 평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고 이런 역설에서 벗어나 커리어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여성의 영역 확장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원래 영역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오인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은 ‘진중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관심사가 바뀌는 감정적 결정’ ‘가족이나 타인을 위한 결정’ 등과 같은 편견 탓에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우선 자기 주도적인 커리어의 대표적인 사례로 케이팝 작곡가들의 커리어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커리어의 점진적 확장이 득이 되는 건 남성 작곡가에게만 해당됐다. 여성 작곡가들은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기 주도적 커리어의 역설을 이겨내지 못하고 쉽게 커리어를 포기했다.
다음으로 유리벽이 왜 생기는지 실험으로 밝혔다. 약 80명의 케이팝 종사자에게 작곡, 작사를 둘 다 하는 사람과 한 가지만 하는 남성 혹은 여성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 남성인 경우 둘 다 하는 사람이 하나만 하는 사람에 비해 자신감 있고 단호하며 독립적·도전적이라고 평가 받았다. 반면 여성의 경우 한 가지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둘 다 하는 사람보다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런 편견이 다른 분야에도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영화 관련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을 진행했다. 마찬가지로 영역을 확장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기 주도성을 낮게 평가받았고 이는 능력과 헌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기업은 유리벽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이런 편견이 여성 직원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여성이 어떤 프로젝트에서 일할지 등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때 상사가 편견을 갖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취적으로 영역을 넓혀 온 전문 여성이 저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이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채용할 필요도 있다. 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여성의 전문 능력에 대한 공식적인 자격 인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