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갈등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더욱 곤란한 처지로 내몰렸다. 미 정부는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공동 대응할 것을 실질적으로 요구했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백악관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급 공백을 메우지 말라고 대통령실에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이 같은 요청을 했다고 양국 정상회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4명은 FT에 말했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에 대한 보복조치 차원에서 마이크론 판매금지를 검토중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달 마이크론이 국가안보를 위반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중국 규제기관 사이버관리국(CAC)이 이번 조사 이후 징벌적 조치를 취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마이크론이 지난해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308억달러를 벌었는데 이는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할 정도 크기 때문에 CAC 결정에 따른 위험이 매우 높다.
CAC 조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한 대중 수출통제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라고 미 정부 관리들과 기업 임원들은 판단한다고 FT는 전했다.
FT에 따르면 마이크론 조사는 중국이 미국 기업에 대해 강압적 경제조치를 취할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실험이 될 전망이다. 중국 관리들을 만난 한 FT 소식통은 미국이 중국 기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인내심을 잃고 있다며 보복을 고려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실제 미국은 중국 반도체 양제츠메모리테크놀리지를 수출통제 기업리스트에 등재했다.
또 이번 백악관 요청은 윤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하기 하루 전인 민감한 시기에 나왔다고 FT는 주목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안보지역에서 동맹국들과 협력해왔지만 동맹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역할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FT는 강조했다.
FT에 따르면 한미 정부가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을 보호하는 노력을 포함해 국가와 경제 안보 문제에 대해 협력을 강화하는 ‘역사적 진전’을 이뤘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러한 역사적 진전에는 “반도체 투자를 조정하고 핵심 기술을 확보하며 경제적 압박을 해결하는 노력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NSC는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계기로 모든 측면에서 협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의 요구에 대통령실의 대응은 불분명하다고 FT는 전했다. FT에 따르면 한미 정부 관리들은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미국이 “핵우산을 통한 확장 억제”를 한국이 어떻게 하면 더 확신할 수 있을지를 포함한 많은 문제를 논의했다.
이어 FT는 “마이크론과 관련한 백악관의 요구에 윤 대통령이 곤란한 입장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현상 유지를 “힘으로” 바꾸려 한다고 비난했고 이는 중국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고 FT는 전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