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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중립과 맹목적 중립[임용한의 전쟁사]〈260〉

입력 | 2023-04-25 03:00:00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두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군주는 군주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대표자로서의 군주이다. 따라서 이 명제는 국가의 행동지침으로 치환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마키아벨리의 시대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졌고, 법과 제도는 민주화되었다. 높은 정의감은 국제관계와 심지어 전쟁에서도 인권과 도덕의식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은 이상이다. 국제사회는 아직은 정글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테러는 21세기의 신념과 지성의 가면을 벗겨 놓았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서방세계와 러시아, 중국이 세계를 향해 내 편 되기를 강요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는 국가도 있다. 지정학적 이유로 이해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우린 그렇지 못하다.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이 만나는 지점이 한반도이다. 게다가 이 반도는 이념이 다른 두 개의 체제로 나뉘어 있다.

이럴 때 등장하는 용어가 중립이다. 어떤 이는 실리를 거론한다. 참 합리적인 이야기 같다. 그런데 중립이란 무얼까? 두 사람이 바둑을 두다가 다투고 있다. 괜히 훈수를 두거나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가만히 두고 보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싸우다가 물에 빠졌다. 한 번에 두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한쪽에 먼저 손을 내밀면 다른 사람과는 원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 이번에도 중립을 지켜 구경만 하면 어떨까? 두 사람과 다 철천지원수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중립이란 나의 의지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립이 실리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중립도 용기가 필요하고, 실리적 행동도 손해를 보지 않는 행동이 아니라 손실을 각오하는 현명한 이익을 선택하는 것이 실리적 행동이다.

중립이란 용기 있는 선택이어야지 현실도피와 비겁함의 대안이어서는 안 된다. 실리가 노력도 고통도 손실도 겪지 않고 이익만 취하겠다는 행동이어서는 안 된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