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혹한기다.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탓에 기업 가치는 낮아지고 투자자는 줄었다. 스타트업 민관 협력 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타트업 투자 유치 금액은 8,958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투자 유치 금액(3조 9,038억 원)에 비해 약 77% 감소한 수치다. 투자 건수도 447건에서 271건으로 약 43% 줄었다.
이런 상황 탓에 스타트업의 자금 고민은 더 깊어진다. GS건설이 설립한 기업주도형 벤처패키탈(CVC)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이종훈 대표는 혹한기에 있는 스타트업에게 ‘스타트업다운 아이템'을 찾고 ‘맥락과 매력’을 강화하라고 조언한다. 이 대표를 만나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5월 설립된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는 11월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신기사)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스마트시티를 테마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단순히 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기업 인프라와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통해 동반 성장을 꾀하고 있다.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이종훈 대표. 출처=IT동아
CVC의 매력 ‘오픈 이노베이션’
IT동아: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대표: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훈입니다. 저는 주로 CVC에서 근무했습니다. SK그룹과 일할 때 처음 경험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당시 CVC 관련해 심도 있게 공부하고 논문도 썼는데, 그러다 보니 CVC 분야에서 전문성을 더 키우고 싶더군요.
마침 롯데벤처스가 투자 본부장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당시 롯데벤처스는 엑셀러레이터에서 벤처캐피탈(VC)로 변화하던 시점이었거든요. 제가 합류해서 VC로 자리매김하도록 열심히 뛰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GS건설과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IT동아: 주로 CVC에 계셨습니다.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대기업에는 자금이나 인력, 시스템 등 사업적으로 활용할 리소스가 많습니다. 특히 스타트업에 필요한 리소스는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죠. 많은 스타트업이 대기업과의 협업을 원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벽이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어떤 리소스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대기업은 스타트업 니즈를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벽을 넘어 양쪽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연결할 수 있죠. 이를 통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혁신을 가속합니다. 이게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기업 경계를 넘나들며 혁신을 이끌어 내는 것)’인데요. CVC는 단순히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허브 역할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차원에서 효율적인 발전을 이끌어 냅니다. 그런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명은 벤처 투자 생태계를 탐구하고 본업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출처=IT동아
주요 투자 영역은 ‘스마트시티’
IT동아: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가 비중을 두는 투자 영역은 어느 곳입니까?
주로 GS건설이 진행하는 신사업과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스마트 인프라, 모빌리티, 도시환경, 드론, UAM, 스마트팜, 디지털트윈 등 IT나 플랫폼, 기술로 기존 문제를 개선하고, 좀 더 효율적인 삶, 깨끗한 삶,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찾고 있습니다. 커머스, 바이오, F&B, 패션, 소프트웨어의 경우 접점이 있으면 포용할 수는 있지만, 그 외에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IT동아: 설립 이후 진행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대표: 스마트시티에 초점을 두고 있는 만큼 처음 만든 펀드도 ‘엑스플로 스마트시티 펀드’였습니다. 다양한 스타트업을 검토하다가 AI 반도체 기업 사피온에 투자했습니다. 데이터센터용, 자율주행용 AI 반도체를 생산하는 곳인데요. GS건설 신사업과의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캠프 엑스플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0여 팀이 지원했는데 현재 최종 검토 단계에 있습니다. 한두 달 안에 투자 기업을 선정할 예정입니다. GS건설 사내 벤처 프로그램 ‘G스타트업’도 기획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20~30개 팀이 도전했고 3팀을 선정해 육성하고 있습니다.
오는 7월에는 서울 창조혁신센터와 함께하는 캠프 엑스플로를 진행합니다. 스마트시티 분야의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준비 중인데요. 오픈 이노베이션까지 지원하려고 합니다. 외부 기관과의 협업하는 만큼 대외 홍보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 대상 지원 프로그램 캠프 엑스플로. 출처=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스타트업 선별 기준 ‘맥락과 매력’
IT동아: 대표님이 스타트업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나요?
이 대표: 저는 두 가지를 봅니다. 맥락과 매력입니다. 우선 맥락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맥락은 쉽게 말해 스토리텔링입니다. 창업팀 구성, 창업 배경, 시장, 제품, 마케팅 전략이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저는 ‘어떤 창업팀’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발견’했고 ‘어떻게 해결’하려는 지를 주의 깊게 봅니다.
사업 아이템은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에 대해 원인과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접근하는지를 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디까지 해봤는지 체크합니다. 벽에 닿아야 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안 가보면 알 수 없습니다. 창업팀이 어디까지 해봤는지를 보면, 그들의 열정과 잠재력, 가능성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기준은 매력입니다. 매력은 수치화가 어렵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성적인 부분입니다. 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느껴지는 기운이나 감성적인 교감을 눈여겨봅니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스타트업다운 아이템’이 필수
IT동아: 스타트업 사업 검토를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투자 유치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 대표: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다운 아이템’입니다. 스타트업이라면 대기업이나 정부, 공공기관이 할 수 없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카오톡, 토스, 한우연입니다. 카카오톡은 이동통신사가 할 수 없는 무료 메신저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토스는 송금 절차를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이 역시 금융권이 먼저 시도할 수 없는 부분이죠. 한우연은 등급이 낮은 한우를 높은 등급의 고기 맛으로 바꾸는 스마트 숙성기를 개발했습니다. 한우 등급제를 거스르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금이나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면 저희가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대기업이 하면 되거든요. 스타트업이라면 기존의 제도나 사회적 역학 관계 등에 얽매이지 않고 이를 거스를 수 있는 패기가 필요합니다.
IR 자료를 만들 때도 신경 써야 합니다. 너무 화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지나 도표에 공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꼭 필요한 내용만 강렬하게 보여주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다른 스타트업의 관련 자료를 많이 벤치마킹하는 것이 좋습니다. 굳이 경쟁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스타트업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모데이나 밋업, 콘퍼런스, 동영상 등 자료를 구할 방법은 많습니다.
요즘 같은 침체기에 CVC가 잘 이끌어야 한다며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기대감에 감사하고,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하지만 CVC도 투자 집행 부분은 여느 투자기관과 같습니다. 침체기라고 해서 기업 평가 기준을 낮추거나 투자 범위를 넓히기는 어렵습니다. 저희는 시장 상황을 떠나서 맥락과 매력이 있는 창업팀에게는 손을 내밀 것입니다. 그것이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다운 아이템'과 ‘맥락과 매력’을 강조한다. 출처=IT동아
IT동아: 마지막으로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의 목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대표: 전략적인 투자(SI)도 잘하는 탁월한 재무적투자자(FI) VC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5~ 6년 차가 되었을 때 최소 2,000억~3,000억 원을 운용하는 VC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블라인드 펀드, 민관 합작 펀드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성장할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극초기 투자를 통해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그 회사의 성장을 지원하면서 마지막 투자까지 하는 것이죠. 실제로 실리콘밸리에는 극초기 투자부터 마지막 투자까지 함께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정말 뿌듯할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런 파트너 같은 스타트업을 찾고 싶습니다.
동아닷컴 IT 전문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