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작업실 구하려 ‘부동산 순례’ 시작했지만 모텔 같은 방이나 소송 중 물건 보여주기도 갓 사회 나온 사람들, 혼란과 어려움 어떨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나처럼 글 쓰는 일을 하는 남편이 일 년간 집중해서 해야 할 작업이 생겼다. 우리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하고 ‘방’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때때로 나도 함께 쓸 계획을 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작업실 월세를 정한 다음, 부동산 순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월세 대비 컨디션이 좋은 신도시 오피스텔을 고려했지만 교통비, 식비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올 수 있는 거리에 마련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예산으로는 오래되고 헌 건물들만 가능했지만 작업실이라고 풍경 좋고 근사할 필요가 있나,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온전한 고독만 있으면 되지 않나 하고 합의를 보았다.
처음 본 일곱 평짜리 방은 정말 좁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여기는 주로 “잠만 자는 방”이라고 소개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도 지방에서 서울로 일하러 온 분이라고. 방 안에는 옷가지 이외에는 별다른 짐이 없어서 그의 바쁜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래도 그 스산한 방의 온기를 돋워주는 물건이 있었는데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의 사진을 넣어둔 액자였다. 돌아오다가 들러본 또 다른 부동산에는 손님들이 북적였다. 인근 대학가 신입생들이 방을 얻는 시기라고 했다. 우리는 거기서도 몇몇 방을 봤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다. 액자가 있던 작은 방을 얻기로 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그 매물은 나간 뒤였다. 이렇게 한가하게 굴 때가 아니구나 싶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더 적극적으로 물건을 보기 시작했지만 일은 점점 꼬여가는 기분이었다. 숙박업 건물이 함께 있는 한 오피스텔 매물을 보러 갔더니 거기는 생활 공간이라기보다는 모텔에 가까웠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방을 보는 척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여기가 보일러실인가요?” 하고 문손잡이를 잡았는데 녹이 슬었는지 고장인지 돌아가지도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보일러실이니까 열 일도 없지 뭐, 괜찮아요” 하고 말이 안 되는 대답을 태연히 내놓았다. 보증금이 저렴한 매물이 있어서 연락했더니 “소송이 여러 개 얽힌 건물인데 서로 고소한 셈이라 오히려 안전하다”라거나, 남편이 매물 문의를 했더니 “집주인이 나이 많은 남성 세입자는 원하지 않는다”라고 자르기도 했다. ‘방’을 두고는 저마다 그런 자기 본위의 민낯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젊은 남성이 등장했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갔다. 볕이 그리 들지 않는 어둑한 방이었는데 젊은 남성은 부동산 중개인 남편에게 방이 너무 좋다고 거의 구애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장님, 조건 변경하시더라도 저희가 할게요, 제가 바로 연락할게요, 꼭 할게요. 내 상식으로는 만약 그 방이 좋다면 오히려 아무 내색도 않고 있다가 우리와 헤어지고 계약서를 바로 쓰면 될 것 같은데 그는 어쩐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람잡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무튼 그 수선스러운 상황을 겪는 동안 남편과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그들과 헤어진 뒤에야 “너무 이상하지 않아?” 하고 서로에게 외쳤다.
부동산 매물의 세계를 전전하는 동안 내게는 이제 방이 생긴다는, 없던 것을 얻게 된다는 감각보다는 이 수상하고 이상한 거래에서 뭔가를 잃으면 안 된다는 손해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부동산 거래를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닌데도, 나이가 들 대로 든 상태에서도 이렇다면 이제 사회로 나온 사람들이 맞닥뜨려야 할 혼란과 어려움은 어떨까. 우여곡절 끝에 작업실 하나를 구해 놓고도 나는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을 그 재난 같은 어려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