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전기요금 결정, 계속 이대로 정치에 휘둘리게 둘 수 없다[광화문에서/유재동]

입력 | 2023-04-26 21:30:00

유재동 경제부 차장


유권자의 표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나라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국정과제는 가급적 정권 초기에 단행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 정부도 인수위 시절부터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재정준칙 마련을 약속하는가 하면, 전기료 원가주의를 강조하며 요금 정상화의 군불을 땠다. 집권을 앞두고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을 때라 가능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이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이행 또는 진전된 것이 없다. 이 정부에 지난 1년은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이 과제들의 공통점은 필요성은 거의 누구나 동의를 하지만 정치에 막혀 해법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의식해 여론 눈치를 보다가 개혁 시기를 놓치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전기요금의 사례를 보자. 다른 선진국은 발전 원가를 요금에 그대로 반영하는 데 반해 한국은 민생을 이유로 역대 정부에서 인상을 계속 억제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한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발전업체로부터 ‘100원에 전기를 사다가 70원에 파는’ 자해(自害)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한전은 무려 32조 원의 손실을 냈다. 일반 사기업이었으면 진즉에 파산하고 공중 분해됐을 규모다.

공기업 한전의 천문학적 부실은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하고 나중에는 더 큰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기 과다 소비가 에너지 수입 증가와 무역적자 누증, 환율 상승을 통해 경제에 이중 삼중의 충격을 준다는 점도 명백한 사실이다. 이 정부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작년부터 올 초까지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왔다. 하지만 인상 폭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올 2분기엔 아예 인상 결정을 보류해 버렸다. 총선이 다가오는 와중에 물가상승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런 난제는 강력한 리더십이 정면 돌파하며 풀어야 하는데 그런 기대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동안 대통령은 물론이고 총리나 부총리 누구도 총대를 메고 요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추경호 부총리는 도리어 “(전기요금은) 당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할 부분”이라면서 ‘경제사령탑’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마저 보였다. 여당은 마치 부실의 주된 원인이 방만 경영에 있는 양 “한전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만을 강조하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바쁘다.

전기료 대응의 패착은 이 문제를 정치에 휘둘리도록 방치했다는 점이다. 정교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안에 정무적 판단이 깊숙이 개입되다 보니 정책 결정은 계속 미뤄지고 아무도 이를 책임지지 않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사람을 탓할 것 없이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임기가 보장된 독립성 있는 인사들로 매 분기 전기요금을 책정하는 위원회를 꾸려 그 결정을 정부가 구속력 있게 받아들이게 하고, 발전원가의 변화를 요금에 일정 비율 이상 반영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만일 가파른 요금 인상으로 생계가 곤란해지는 저소득층이 생긴다면 정부가 선별적으로 도우면 된다. 지금은 지난 1년의 시행착오에서 배우고 발상의 전환을 이뤄 나가야 할 때다. 우리나라 최대 공기업이 버틸 여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