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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한중은 있지만 한미는 없는 의원연맹…국회, 본격 시동[정치 인&아웃]

입력 | 2023-04-27 06:00:00

한미동맹 70주년 맞아 국회 한미의원연맹 창설 시동
미국 자국우선주의 강조되자 의회외교 중요성 커져
김진표 “6월 중 미국 방문 추진할 것”
전문가 “창설뿐 아니라 내실 있는 운영 중요”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한미 의회가) 미리 조율했으면 갈등 없이 해결하지 않았을까. 한미의원연맹 같은 기구가 있어야 많은 현안을 미리 협의하고 논의할 수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미의원연맹 창설,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한 원탁회의 참석자들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위해 양국 의회가 보다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입을 모았다.

국회가 한미의원연맹 창설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나섰다. 국회는 2월 연맹 창설 내용을 담은 특별결의안을 채택했고, 이날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움직임에 착수했다. 한미외교포럼 공동회장인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해 한미의원연맹 창설을 위해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회가 대미 외교 강화를 꾀하는 건 최근 미국이 자국내 제조업 강화와 공급망 확보를 목적으로 반도체, 전기차 분야 등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정부, 민간 단위의 소통을 뛰어 넘어 양국 의회의 직접 소통채널이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미동맹 70주년인 올해가 양국 의회외교를 강화할 적기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26일 국회사무처와 국회미래연구원은 국회에서 의회외교 라운드테이블을 열고 ‘한미의원연맹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국회사무처 제공







● “한미의원연맹 창설 지금이 적기”
국회사무처와 국회미래연구원이 연 이날 원탁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미의원연맹 창설이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기조연설에 나선 수 미 테리 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미 의회의 한미 관계 관심은 과거에는 북한 문제에 초점이었다가 인도태평양 문제로 확대됐고 지금은 양국 간 산업과 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갔다”며 “양국은 과거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는 문제나 한국과 같은 동맹국 관계를 증진시키는 문제는 초당적 우선순위 문제”라며 “지금이 양국 의회간 교류기구를 만들기 좋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탈냉전시대와 미중 경쟁시대를 맞아 미 의회가 안보, 무역, 경제, 환경 여러 가지 분야에서 굉장히 적극성을 띠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시대만 해도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행정 명령’을 주로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시기에는 입법 정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간 소통을 넘어서 미 의회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의 이런 조언에 회의에 참석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 등 여야 의원들도 동의를 표했다.







● 미 의회 직접 소통 요구 커져
국회는 2월 24일 본회의에서 한미의원연맹 창설 내용을 담은 ‘한미동맹 70주년 특별 결의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채택했을 정도로 한미의원연맹 설립에 적극적이다. 올해가 한미 동맹 70주년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미국의 자국보호주의 노골화가 우리 국회가 대미 의회외교를 강화할 필요성을 체감케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자국내 제조업 생산을 강화한다며 IRA와 반도체지원법을 지렛대 삼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그 부담은 현대자동차 등 국내 전기차 업체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에 고스란히 넘어오고 있다.

이에 국회도 의회외교를 통해 돌파구 마련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2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정부 대표단과 함께 미 상·하원을 찾아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IRA의 한국 기업 차별 문제에 대한 국회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산발적인 소통만으로는 앞으로 계속될 미국과의 통상문제에 대해 미 의회를 근본적으로 설득하기 어렵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현재 국회 내에 대미 의회외교 단체는 ‘한미 의회외교포럼’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21대 국회에서 한미의회포럼의 공식 활동으로 공개된 것은 2021년 7월 ‘한미 의회외교포럼 코리아스터디그룹 대표단 간담회’가 유일하다.

국회 관계자는 “현재 대미 의회 외교업무만을 전담하고 있는 부서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의회포럼’과 다르게 ‘의원연맹’은 국회 소관 보조금 단체(사단법인)로 설립되기 때문에, 한미의원연맹이 설립되면 대미 의회 외교에서 사무국의 행정적 지원과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현재 미 의회가 공식적으로 의원연맹 교류를 하는 나라는 영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중국, 러시아 6개국이다. 김 의장은 이날 여야 원내대표 회동 자리에서 “6월 중 미국 방문을 추진하는데, 미 의회에서도 미한의원연맹으로 화답할 수 있도록 마무리 지을까 한다”고 말했다.

한미의회포럼 회원이자 지난해 12월 미국을 찾았던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한미의원연맹 필요성에 대해 “(12월에) 의원들이 함께 가지 않았으면 통상교섭본부장이 그렇게 많은 미국 의원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국 의회는 권한이 막강해 의원들과 직접 협의하는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미의회포럼의 회원인 민주당 김병주 의원도 “미국은 우리와 다르게 입법권, 예산 편성권을 의회가 모두 가지고 있어 미국 정책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미 의회를 설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일의원연맹 넘어선 내실화 필요
현재 우리 국회가 특정 국가를 상대로 등록한 의원연맹은 한일의원연맹, 한중의원연맹 두 개 뿐이다. 국회는 한미의원연맹 창설을 위해 한일의원연맹을 주로 참고하고 있다. 김 의장을 이날 회의에서 “한국과 일본 국회의원들은 양쪽에 다 사무처를 두고 긴밀하게 서로 협력해 왔다”며 “양국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 과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고, 양국 간 현안 해결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김 의장 역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은 바 있다.

한일의원연맹은 1972년 3월 설립된 ‘한일의원간친회’를 근간으로 한다. 이후 양측에서 각각 ‘한일의원연맹’, ‘일한의원연맹’이라는 상설기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21대 국회에서 한국 국회는 163명의 의원이 이 연맹에 가입돼 있고, 지난해 말 기준 일본 중·참의원 713명 중 239명이 일한의원연맹 회원이다.



2015년 6월 국회 헌정기념관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선린외교의 재조명 강연회. 한일의원연맹이 공동주최했다.  동아일보DB



한일의원연맹은 그동안 한일간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다수 해왔다.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지자 한일의원연맹은 ‘교과서문제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일한의원연맹도 ‘교과서 특별위원회’ 설치로 호응하며 양국 의회가 문제해결에 머리를 맞댔다. 이외에도 △문화재 반환 문제 △재일 한국인의 지방참정권 문제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한일 비자 면제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해 왔다.

다만 최근 한일의원연맹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 일본 수출 규제 문제에서 외교적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등 갈등조절과 물밑 교섭 능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연구소는 18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현안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정부 간 교섭을 측면 지원하는 역할로 축소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미의원연맹은 보다 내실있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서 교수는 “한미의원연맹의 창설뿐 아니라 활성화가 중요하다”며 “안보, 통상, 과학 등 첨예한 중요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소그룹간 의원교류가 필요하고, 정규, 상설 연락채널인 의회연락사무소 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