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선 한국지식재산보호원장
학교 폭력을 주제로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흥행하면서 극 중 연진이의 딸 예솔이가 메고 나온 책가방도 화제가 됐다. 세련된 디자인과 고품질에 ‘강남 책가방’으로 유명한 해외 명품이라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은 국산 브랜드다. 하지만 중국산 위조상품(소위 ‘짝퉁’)이 시장에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가방 제조 업체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국산 브랜드가 해외 명품으로 오인되어 인기를 끌고 짝퉁까지 나도는 현실이 씁쓸하다.
한국인의 해외 명품 사랑은 유별나다. 세계 명품 시장 규모가 2022년 기준 451조 원인데 우리나라는 약 7조5000억 원으로 세계 10위권이다. 최근 들어 해외 명품 수요가 더욱 늘어 2021년에는 전년 대비 30% 가까이 소비가 급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2만2000건의 국제특허를 출원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와 뛰어난 혁신 역량으로 지식재산권의 ‘창출’ 측면에서는 세계 5강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지식재산권의 ‘보호’ 문제는 우리의 아픈 손가락이다. 작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순위는 조사 대상 63개국 중 37위에 불과하다. 짝퉁 천국이라는 중국(36위)보다도 아래다.
무엇보다 국내외 위조상품 단속이 강화되어야 한다. 작년 한 해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은 국내에서 20만 건의 짝퉁 판매 사이트를 단속했다. 해외에서도 알리바바, 라자다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긴밀히 협력해 26만 건의 짝퉁 K브랜드를 차단했다. 7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3조70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봤다. K브랜드 위조상품 피해 규모가 한 해 22조 원임을 감안하면 관련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이 시급하다.
법 제도적 측면에서도 손을 봐야 한다. 국회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에 위조상품을 발견하여 신고하면 판매 게시물을 삭제 조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짝퉁 방지법’이 논의되고 있다. 조속히 통과되어야 할 것이다.
LVMH는 루이비통으로 대표되는 명품 패션 기업으로 독보적인 프리미엄을 자랑한다. 온라인에서 단돈 1만 원에 판매되는 아주 기본적인 티셔츠에 이 회사 로고만 붙이면 91만5000원짜리 명품이 된다. 이게 브랜드의 힘이고 지식재산권의 가치다. 우리 K브랜드도 이렇게 키워야 한다. ‘예솔이 책가방’을 사기 위해 오픈런이 벌어지고 가방 만드는 사장님이 국내 최고 부자에 등극하는 날이 와야 한다. 역대 최초로 정부 국정과제에 ‘지식재산 보호 강화’가 들어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용선 한국지식재산보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