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57〉자화자찬의 이면
영화 ‘피셔 킹’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패리는 자신이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나선 기사라고 여긴다. 트라이스타 픽처스 제공
테리 길리엄 감독의 ‘피셔 킹’(1993년)에서 패리(로빈 윌리엄스)는 충격적 사건을 겪은 후 자신이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 나선 기사라는 환상에 빠져든다. 연암 박지원(1737∼1805)과 동시대 인물인 이언진(1740∼1766)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뒤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화자찬을 남긴 바 있다.
영화 속 패리의 과대망상은 인기 DJ인 잭이 라디오 방송 중 무심코 던진 말에서 비롯한다. 잭은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고 폐인이 된 패리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낀다. 박지원 역시 시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시인은 박지원의 안목을 믿고 자신의 글을 보내 평가를 부탁했지만 화려하고 세련됨만을 추구한 글이란 혹평을 받고 절망했다. 얼마 뒤 시인의 부고를 들은 박지원은 자신이 뱉은 말을 후회했다.
불교에선 말을 잘못해서 짓는 업(業·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행위)을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영화 속 잭도, 박지원도 자신의 말 한마디가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의 죄’를 짓는가. 과장된 자화자찬의 이면에는 가혹한 말들로부터 받은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가 있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