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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사람 있다” 외침에 소방관이 할 선택은 많지 않았다 [따만사]

입력 | 2023-04-27 12:00:00

졸업 후 3연속 낙방에도 포기 않고 도전
임용 뒤에도 틈틈이 시간 내 승진시험 공부
얼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에 타
그날 밤 동료 직원들 잠 못 이뤄




고(故) 성공일 소방관의 생전 모습 (김제소방서 제공)


“안에 할아버지가 남아 있어요” 할머니의 애타는 외침에 20대 젊은 소방관은 불타는 목조주택 안으로 주저없이 뛰어들었다. 임용 10개월차 새내기 소방관은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3월 6일 밤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불이난 주택에서 74세 노인을 구조하다 숨진 고(故) 성공일 소방교(29)의 이야기다.

동아닷컴은 성 소방관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제소방서와 금산119안전센터 동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날의 상황을 다시 한번 들여다 봤다.

최초 신고는 그날 오후 8시 33분경 이뤄졌다. 하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 카페 관계자가 “단독 주택에 불이났다”며 119에 신고했다.

주요직무는 ‘펌프’…“업무구분 안 가리고 나섰다”
최초로 현장에 도착한 소방팀은 금산119안전센터 소속 5명(펌프 2명, 구급 3명)이었다. 여기에 성 소방관이 포함돼 있었다. 성 소방관의 주요직무는 펌프(화재진압대원)였다.

불은 주택 옆 공터에서 쓰레기를 소각하고 남은 불씨가 목조 건물로 옮겨 붙으며 시작됐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집 전반에 화염이 번진 상황이었다.

풍속 0~4m/s 정도의 바람이 불고 있었고, 주변에는 놀란 주민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고(故) 성공일 소방관이 뛰어든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화재 주택 (김제소방서 제공)


이 집에는 70대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방안에서 불을 본 할머니가 먼저 집밖으로 나왔고, 할아버지는 집 안에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할머니와 주민들은 발을 구르며 “안에 할아버지가 있다”고 다급하게 외쳤다. 성 소방관의 주요직무는 화재진압이었지만 그런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사방에서 불이 분출하고 까만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김제소방서 관계자는 “안에 사람이 있다는 다급한 외침에 소방관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며 “성 소방관은 ‘업무구분’을 가리지 않고 소방관으로서 책무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화재·인명 구조 현장에서 늘 남보다 앞서던 행동이 이날도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작은방서 쓰러진 채 발견…할아버지 찾다가 질식한 듯
성 소방관이 들어갈 당시 할아버지 위치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동료구급대원들은 화염이 거세지는 상황을 대비해 진입을 만류했지만 성 소방관은 망설임 없이 장비를 착용하고 주택 뒤쪽을 통해 집안으로 홀로 진입했다. 그게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성 소방관이 들어간 후로 화염은 급격하게 거세졌다. 주민들은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성 소방관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고립됐다고 판단한 동료대원들은 신속구조팀을 투입, 대응1단계를 발령하고 긴급대응에 들어갔다. 이날 현장에는 최종적으로 장비 26대 인력 70명이 투입됐다. 소방관들은 펌프차 2대를 전면 배치하고 화마와 사투를 벌였다.

화재 진압 후 잿더미가된 주택(소방청 제공)

화재 진압 후 잿더미가된 주택(뉴스1)


성 소방관은 화재 진압 도중에 발견됐다. 동료 구조대가 내부 수색 과정에서 작은방에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화장실 근처 거실에서 발견됐다. 성 소방관의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에 탄 상태였다고 한다.

성 소방관이 건물로 들어간 후 쓰러지기까지는 다양한 상황과 변수들이 있기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소방서 측은 밝혔다. 다만 사인이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인 것으로만 확인됐다.

불은 약 1시간 20만인 오후 9시 53분경 꺼졌다. 그날 밤 김제소방서 내, 외근 모든 직원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막내가 숨졌다는 비보를 전해들은 대원들은 그 비통한 순간에도 슬픔을 뒤로한 채 또 다른 국민들의 119 신고를 받고 달려가야만 했다고 동료들은 밝혔다.

“아빠 내생일 16일 알지? 맛난 거 먹자”

고(故) 성공일 소방관의 제복



성 소방관은 전북 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 했다. 고교생 때부터 소방관이 꿈이었던 그는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에 입학했다. 소방관 임용시험에는 졸업하고도 3연속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4수 만에 그토록 원하던 소방관의 꿈을 이뤄냈다.

사건 열흘 후인 3월 16일은 성 소방관의 생일이었다. 성 소방관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빠 내 생일 16일인 거 알지. 같이 맛난 거 먹게 알아서 예약 좀 해줘요.” 이 말이 그의 출근길 마지막 말이었다. 뭘 먹고싶냐고 묻자 “엄마 아빠 드시고 싶은 곳으로 예약해 줘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버지 성용묵 씨(53)는 장례식장에서 “어렵게 소방공무원에 합격하던 날, 밝게 웃던 아들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더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착실하고 주관이 뚜렷한 아들이었다. 최근엔 틈틈이 시간을 내 승진시험을 공부하겠다고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일 있을 때 먼저 손들고 나서던 적극적인 친구”


성 소방관은 지난해 5월 4일에 임용됐다. 함께 김제소방서로 발령받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그를 꿈 많고 모든일에 적극적이었던 책임감 있는 동료로 기억했다.

“공일이는 입사 당시 소방공무원이 된 것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현장 업무에 충실하고 직원 간의 소통이 원활해 칭찬이 자자 했다” 동료들은 이렇게 말했다.

송현호 금산119안전센터장은 “막내인데도 평소 성실하고 책임감이 매우 강했다. 화재, 인명 구조 현장에서 늘 남보다 앞서 행동했다”고 했다.

고교 동창 노모 씨(30)는 “무슨 일이 있을 때 먼저 손을 들고 나서는 적극적인 친구였다”고 떠올렸다.

입사 동기인 금산119안전센터 이정환 소방사는 ”소방학교 교육 중에 갔던 영광 불갑사에 핀 꽃을 다시 한번 보자고 약속한 일년이 곧 다가오는데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영결식 조사를 하며 울먹였다.

고(故) 성공일 소방관이 떠나는길에 동료 소방관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김제소방서 직원들은 아직까지 동료를 잃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방서 관계자는 기자에게 “동료 직원을 잃은 후 모든직원들은 먹먹한 가슴에 슬픔을 감출 길이 없다. 시간이 지난다고 무뎌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영원히 동료들 곁에 남아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