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추산 ‘영 케어러’ 첫 실태조사
김모 씨(33·서울 성동구)는 18세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친언니를 홀로 돌보고 있다. 언니는 김 씨가 자리를 비우면 머리를 자르거나 자해를 하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다. 부모의 부재 속에 지난 15년 동안 생계도 오로지 김씨의 몫이었고, 학업도 병행해야 했다. 하루 2시간만 자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공장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언니를 돌봤어도 휴대전화 요금 낼 돈조차 없이 궁핍했다.
김 씨는 “휴학이 잦아 8년 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했지만, 언니를 돌보느라 스펙이나 경험 쌓을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며 “취업 면접 때 ‘졸업이 왜 이렇게 늦었냐’ ‘이 시간 동안 스펙 안 쌓고 뭐 했느냐’는 물음을 들을 때는 너무나 비참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김 씨처럼 중증질환, 장애, 정신질환 등이 있는 가족을 돌보고 있거나, 그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돌봄청년(13∼34세)의 실태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체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조사다. 가족돌봄청년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최대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돌봄 대상은 할머니(39.1%)에 이어 형제자매(25.5%), 어머니(24.3%), 아버지(22%) 순이었다. 중증질환자(25.7%)가 가장 많았고 장애인(24.2%), 정신질환자(21.4%), 장기요양 인정 등급(19.4%), 치매 환자(11.7%) 순이었다.
하지만 가족돌봄청년 10명 중 4명은 돌봄 지원 등의 어떠한 복지 서비스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돌봄청년의 40.7%는 의료비나 생계비 지원 등 현금성 복지 지원을 이용해본 경험이 없었다. 47.3%는 가정방문돌봄 등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없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돌봄청년의 경우 복지 시스템이 있어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발굴하고 복지-돌봄 서비스와 연계해야 한다”며 “자립을 도우려면 구직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