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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힘들어도[이은화의 미술시간]〈264〉

입력 | 2023-04-27 03:00:00


젊고 아름다운 세 여자가 어두운 바위틈에 숨어있다. 칼을 든 왼쪽 여자는 가운데 여자와 함께 긴장한 얼굴로 망을 보고 있다. 오른쪽 여자는 아픈 건지 다친 건지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하고 있다. 대체 이들은 누구이고 무슨 일로 이러고 있는 걸까?

제임스 산트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가장 성공한 초상화가 중 한 사람이다. 20세에 왕립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평생 아카데미 전시에 참여하며 명성을 쌓았다. 51세에 빅토리아 여왕의 수석 궁정화가로 임명된 뒤 94세까지 무려 43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역사화에도 도전했지만, 어린이와 여성을 그린 초상화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 우화적인 주제도 종종 그렸는데, 이 그림 ‘용기, 두려움 그리고 절망: 전투를 지켜보다’(1850년경·사진)도 특정 모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마음 상태를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 여자는 지금 바위틈에 숨어서 밖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의 칼을 든 여인은 용기를 상징한다. 맨 앞에서 동료들을 이끌고 전쟁에 나갈 태세다. 가운데 여인은 두려움을 상징한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오른쪽 여인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다쳤다. 절망의 상징이다.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지만, 그림 속 여인들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어쩌면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세 가지의 마음 상태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용기를 내고 싶지만, 두려움에 망설이게 되고, 절망감과 패배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 말이다.

용기는 두려움에 맞서 어려운 일을 해내는 굳센 기운이다. 혼자는 힘들어도 연대하면 그 힘이 배가 되기도 한다. 그림 속 용기는 절망의 손을 꽉 잡고 있다. 쓰러지는 동료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표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손잡아 주는 이가 있다면 절망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 법. 화가가 전하는 메시지도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