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금태섭 전 국회의원(이하 금태섭)에게는 3인의 유명한 스승이 있었다. 한 명은 학문적 가르침을 받은 스승이요, 나머지 두 명은 정치적 스승이렷다. 그중 누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과 같은 위대한 스승인지, 아니면 반면교사해야 할 대상인지, 정치인 금태섭의 행보를 보고 독자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잘못된 만남’이다. 금태섭 주변에선 “어떻게 10년 동안 안 되는 길만 골라 가나 싶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태섭은 ‘개구리 왕자’처럼 눈이 크지만 사람 보는 안목은 장식품 수준이요,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급이다.
정의의 여신은 형상이 조금씩 다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뜨고 저울과 법전을 든 형상인데 공교롭게 금태섭이 저서 ‘디케의 눈’ 책 표지에 인용한 사진은 눈을 가리고 칼과 저울을 든 형상이다.
금태섭 저서 ‘디케의 눈’에 나온 정의의 여신상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오른쪽 아래). 동아일보 DB
● 정치권 입문 계기 된 안철수와의 결별
2021년 2월 금태섭 전 국회의원(왼쪽)과 안철수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세부 사항을 논의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첫 출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금태섭은 2007년 검찰을 나온 뒤 5년 만에 2012년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안철수 의원(현 국민의힘)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 전 ‘시골 의사’ 박경철 씨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2012년 봄에서야 비공식 캠프인 ‘여의도 오피스텔’에 합류한 것이다. 금태섭은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우리 앞에 선택의 길은 그렇게 평면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등을 놓고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가며 한 명을 고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 나도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것처럼 어떻게든 정권을 교체해서 판을 갈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그런 계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안철수 원장뿐이었다. (중략) 나는 그 노력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한 것이지 여러 정치인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2015년 8월 발간한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중 -
한마디로 얘기하면 정치는 시작해야겠고 딱히 안 의원을 ‘주군’으로 삼을 만큼 끌리진 않았지만 마침 제안이 들어왔으니 합류했다고 다소 솔직히 밝힌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금태섭이 안 의원과 사실상 결별한 뒤 쓰여졌다.)- 2015년 8월 발간한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중 -
그 뒤 그는 안 의원에 대한 언론과 야당 등의 검증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네거티브’ 대응을 맡았다. 박근혜 캠프의 정준길 변호사가 금태섭에게 전화를 걸어 이른바 ‘안철수 대선 불출마 종용’ 논란이 일었고 이 일로 어쨌든 유명해졌다.
그해 11월 23일 당시 민주당과 단일화 협상을 진행하던 중 안 의원이 결국 후보 사퇴를 결심하면서 진심캠프도 해산됐다. 안 의원은 18대 대선 당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꺾으면서 당시 여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국민 금쪽이’ 안철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황형준의 법정모독]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30222/118030167/1
이 내용이 언론에 주목을 받자 2015년 8월 안 의원 측 인사는 이같이 말했다.
“금 변호사가 당시 미국에 온 게 결국 4월 재·보선 때 노원병에서 자신이 나가려고 한 것인데, 거기에 대한 설명은 쏙 뺐다.”
- 취재 메모 중 -
당시 금태섭은 2013년 4월 24일 치러지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대선에서 패배한 지 몇 달 안 된 안 의원이 출마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대신 자신이 출마할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귀국해 보궐선거에 직접 출마했고 금태섭은 노원병 선거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무소속으로 당선이 됐다.- 취재 메모 중 -
그 뒤 안 의원은 신당 창당 방침을 밝혔고 금태섭도 신당 창당기구의 대변인을 맡으며 활동했다. 그러던 중 그해 3월 2일 안 의원이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격 합당을 발표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다. 비밀리에 추진되던 합당 계획이 발표되고서야 알게 된 금태섭은 2012년 후보 사퇴에 이어 또 한 번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 뒤 안 의원이 새정치민주당을 탈당해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도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금태섭은 민주당에 그대로 남았다. 그해 1월 말 금태섭이 했던 이야기다.
“지지난주에 안철수 의원을 만났다. 자기가 2015년에 왜 탈당했는지 말한 다음에 ‘금 변호사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고 오래 생각해서 한번 결정하면 안 바꾸는 사람이니까 내가 얘기해도 소용없겠지만 우리 당에 왔으면 좋겠다. 공천받고 출마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내가 ‘진심으로 잘하시길 바라지만, 이번에는 당에 있는 게 맞겠다’고 했고 안 의원은 ‘언제든 생각 바뀌면 이야기해라’고 했다.”
- 취재 메모 중 -
- 취재 메모 중 -
● 20대 국회 입성…촉망받는 초선으로 ‘신들린 발연기’까지 소화
2019년 국회의원들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 중의 하나인 백봉신사상 대상을 받을 당시 금태섭 전 의원의 모습.
결국 금태섭은 민주당 후보로 서울 강서갑에 출마해 20대 국회의원이 됐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대변인에 발탁됐고, 추미애 대표 시절엔 전략기획위원장을 맡는 등 초선 의원으로 당 요직을 맡았다.
대선 직전엔 문재인 캠프의 정책홍보 사이트인 ‘문재인 1번가’를 홍보하기 위해 배우 정우성 장쯔이가 등장했던 ‘2% 부족할 때’ 음료의 과거 광고를 패러디해 추미애 당시 대표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나무위키에는 ‘신들린 발연기’였다고 표현돼 있다.)
원내에선 법조인의 전문성을 살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촉망받는 초선 중 한 명이었다. 초선으로선 이례적으로 2019년 백봉신사상 대상을 받았다.
● ‘지도교수’ 조국 전 장관 정면 비판… ‘조금박해’로 불려
2017년 11월 공수처 설치법 제정 관련 더불어민주당 당정청 회의에서 당시 민주당 금태섭 의원과 그 옆에 있는 조국 민정수석 등이 손을 잡고 있다. 동아일보 DB
금태섭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각각 서울대 법대 86학번과 82학번이다. 네 학번 차이지만 조 전 장관이 학교를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나이는 두 살 차이다. 금태섭은 학교 다닐 때는 조 전 장관을 몰랐지만 대검찰청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그를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검사 시절 금태섭은 1년간 미국 연수를 통해 석사 학위를 땄지만 논문을 안 쓴 상태였다. 교수들이 논문 없는 석사를 탐탁지 않게 여겨서 박사 과정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안면이 있는 조 전 장관에게 부탁했고 그가 금태섭을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친하게 지냈다. 결국 금태섭은 논문을 쓸 여유가 없었고 박사 학위는 받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금태섭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조 전 장관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한 적도 있다.
“나는 조국 교수가 그때부터 정치를 시작하더라도 18대 대선에서 야권의 후보로 나가 한나라당의 박근혜 후보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야권에 유리하게 조성된 서울시장 선거에 나간다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봤다. 그러면 야권은 설사 대권에서 패배하더라도 젊고 유력한 정치인을 서울시장으로 보유하게 되는데 여기엔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지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었다.” -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중에서 -
그러나 조 전 장관은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없었고 대신 박원순 변호사를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조 전 장관은 초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됐다. 이어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박상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조 전 장관을 지명했고 자녀 입시비리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여기서 ‘그 일’이 벌어졌다. 법사위 소속이었던 금태섭은 조 전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금수저는 진보를 지향하면 안 되냐’고 반박한 점을 언급하며 “사람이 이걸 묻는데 저걸 답변하면 화가 난다. 언행불일치 동문서답식 답변으로 상처를 깊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조 전 장관을 몰아세웠다. 이어 “진보적 삶을 살아왔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게 아니다. 언행불일치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미움을 샀다. 그 뒤 조 전 장관과의 관계도 사실상 끝났다.
또 금태섭은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검찰개혁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주장했고 검찰의 직접 수사는 줄이는 방향의 검경 수사권 조정에 회의적이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결국 2019년 12월 공수처법 수정안을 민주당이 밀어붙이며 본회의에서 표결할 때 기권표를 던졌다.
금태섭은 쓴소리를 하던 당내 ‘비주류’ 조응천 박용진 김해영 당시 의원과 함께 ‘조금박해’로 몰리며 한 묶음으로 ‘빨간 점퍼’라는 비판을 받았다. 겉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비아냥이었다.
결국 그는 21대 총선 경선에서 탈락했다. 그 과정도 결과도 물밑에서 이뤄졌지만 그는 경선 결과 발표날 필자에게 “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다. 면목이 없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심지어 그해 5월 말 당 윤리심판원은 공수처법 표결에서 기권을 했다는 이유로 금태섭에 대해 ‘경고 처분’을 내렸다. 다음은 당시 민주당 징계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한 필자의 칼럼이다.
민주당은 징계 당규부터 고쳐라[여의도 25시/황형준]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630/101742414/1
결국 금태섭은 같은 해 10월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마지막 항의의 뜻으로 충정과 진심을 담아 탈당계를 낸다”고 밝혔다.
‘내로남불’을 비판하며 소신 있고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금태섭이 국민들에게 각인되는 장면이었다. 메시지에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파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당내 세력이 없는 혈혈단신 비주류 초선 의원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듬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인위적으로 체급을 올렸지만 평가는 냉정했다. 안철수 의원과의 ‘제3지대 후보’ 단일화에서 패배했고 안 의원도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금태섭으로선 서울시장 출마로 인지도를 올렸을지 모르지만 별로 얻은 게 없는 선거였다.
● 금태섭의 ‘멘토’ 김종인의 빛과 그늘
그 뒤 금태섭은 정치평론가로서 언론 기고와 방송 출연, 방송진행자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이달 18일 국회에서 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모임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양극화, 편 가르기식 정치, 양당제의 문제 등을 한국 정치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새롭게 출현할 세력은 기존 한국 정치의 문제들을 일소하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추어야 하고 자기편에게 유리한 의제가 아닌 우리 사회에 진짜 중요한 문제를 찾아서 제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기존 정당들의 행태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반사체’가 되는 데서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비전을 제시하는 ‘발광체’가 되어야 한다. 양 진영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재의 정치 지형을 3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세력을 갈아치우겠다는 의지와 힘이 있어야 새로운 세력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올해 9월 추석 전에 제3지대 깃발을 들어 올리겠다”고 했다.금태섭이 신당 창당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청년들이 주축이 된 신당을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에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좌장을 맡았고 신당 창당에 대해 “금 전 의원이 용기를 갖고 그런 시도를 하니까 도우려 한다”고 했다. 여야를 두루 경험하고 ‘킹 메이커’이자 영향력 있는 ‘스피커’ 원로인 김 전 위원장은 금태섭에겐 든든한 후원자다. 하지만 청년 신당 방침을 밝히는 자리에 노회한 정치인이 등장해 배후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지적도 있다.
금태섭은 2016년 당시 민주당 비대위 대표였던 김 전 위원장으로부터 공천장을 받은 인연이 있다.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국 사태와 공수처법 반대 등 과정에서 금태섭이 소신 발언을 할 때마다 김 전 위원장으로부터 격려를 받았고 공천에 탈락했을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것도 김 전 위원장이었다고 한다.
금태섭도 김 전 위원장에 대해 “양당을 다 경험했고 또 오래 정치를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무슨 개인적인 욕심이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는데 적어도 제가 겪어본 바로는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당신이 무엇을 하시겠다는 게 아니라 나보고 이런저런 걸 해보라고 조언하는 관계”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반영시켰고 박근혜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한 원로다. 하지만 대선에 직접 ‘플레이어’로 나섰다가 일주일 만에 철수한 적도 있다. 2017년에 민주당을 탈당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주목을 받지 못하자 출마를 접고 안철수 의원을 지지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도 가까운 그는 금태섭과 이준석 같은 인물을 통해 한국 정치의 변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금태섭은 정치인 10여 년 동안 좌충우돌 ‘잘못된 만남’을 이어왔다. 그리고 결별을 거듭했다. 이제 그가 주도하는 제3지대 신당 창당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참스승으로 그의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금태섭이 3인의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 성공 여부에 따라 정치인 금태섭의 미래도 달렸다.
금태섭 전 의원에겐 팬덤이 아직 없습니다. 정치 10년이면 팬클럽이라도 생길 만한데 없습니다. 임팩트가 약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는 “조직이 안 되어서 그러지 길에서 보는 사람들은 다 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밉지 않은 왕자병입니다.
신당 창당 방침을 두고도 그 주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대선 주자도 아닌데 함께 출마할 인물도, 조직도, 아직까진 콘텐츠도 뭔지 모르겠다”는 등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금태섭 신당’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양당으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하에 논의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낡은 잣대’로 바라보지 말라고 합니다. 그는 “과거 개인을 중심으로 한 창당은 모두 실패했다. 세력화보다는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답을 찾기 위해 논의하고 또 공부도 하고 전문가들 얘기도 듣고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더 이상 묻기가 어려워 혼자 그의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그래도 그의 ‘근자감’과 충만한 ‘똘끼’라면 좀더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다음 [17화]는 2주 뒤인 5월 11일까지 차분히 써볼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야권의 ‘셀럽’이어서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분입니다. 그래서 다들 잘 아는 것처럼 친숙하지만 진면목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선 피아를 떠나 다들 “대단한 사람”이라고 감탄하는 인물입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