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나락 빠뜨린 공인중개사들
협회 차원 사과와 엄격한 처벌 필요
장원재 사회부장
오래전 신혼집을 구할 때였다. 부동산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는 “곧 아파트 인근 군부대가 이전하고 터널이 뚫리면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가격이 안 맞아 자리를 뜨자 여러 번 전화해 “집주인과 오늘 오후 6시까지만 이 가격으로 팔기로 했다”고 압박했다. 결국 계약했지만 10년 후 집을 팔 때까지도 터널은 뚫리지 않았고 ‘공인중개사는 누구 편인가’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최근 당시 기억이 되살아난 건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일당 공소장을 읽으면서였다. 공소장에는 주범 남모 씨(61) 외 공인중개사 6명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들은 남 씨의 중개팀에 소속돼 급여와 상여금을 받았고, 일부는 자신의 명의를 빌려줘 남 씨가 주택을 사들이게 하는 대가로 매달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을 찾은 사회 초년생들이 망설이면 “집주인이 건물 여러 채를 보유해 보증금을 충분히 돌려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근저당권이 설정된 점을 지적하면 “한 번도 문제 생긴 적 없으니 걱정 말라.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경우 책임지겠다”고 했다. 공인중개사사무소 명의의 이행각서나 공제증서도 써 줬는데 이 역시 남 씨의 지시였다고 한다.
주모자는 남 씨였지만 일당 61명의 중심에는 공인중개사 6명이 있었다. 그 결과 20, 30대 청년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천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경기 구리에선 경찰이 전세사기 혐의를 받는 공인중개사 약 40명을 입건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당 수백만 원씩 뒷돈을 받은 공인중개사는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동탄에서도 전세사기에 가담한 혐의로 공인중개사가 출국금지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피해 주택을 중개했던 부동산의 공인중개사는 본보 기자에게 “넘겨받은 사무소인데 전임자가 사고 거래를 하도 많이 해 고소한 상태”라고 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신의와 성실로 공정하게 중개 관련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공소장에 따르면 미추홀구에서 집을 구하던 사회 초년생들이 공정한 중재자를 기대하며 부동산을 찾았을 때 이들을 맞이한 건 범죄조직의 하수인이었다.
그럼에도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협회 차원의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대신 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만들어 달라는 서명을 대통령실과 국회 등에 전달하는 등 이번 기회를 숙원 사업 해결에 활용하려 시도 중이다.
부동산 업계의 일탈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규모와 정도가 도를 넘었다. 전국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면 11만 중개사 중 일부의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인중개사는 바가지 씌우기의 대명사였던 ‘용팔이’와 다를 게 없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